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인 고영희(51)씨는 지난 주부터 사망설이 본격적으로 나돌다가 사망 17일만인 30일에야 비로소 사망이 확인됐다.

북한 사회의 철저한 폐쇄성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첫 소식은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에서 나왔다. 산케이는 지난 11일 서울의 정보소식통들을 인용, 고영희씨의 중태설을 보도했다.

고영희가 파리에서 유방암 치료를 받고 귀국한후 북한이 프랑스에서 엄청나게 비싼 관(棺)을 구입, 특별기 편으로 평양에 수송했고, 이는 고영희 병세와 관련이 있다는 얘기였다.

고영희가 파리에서 유선암 치료를 받았고, 귀국길에 병세가 아주 위독했다는 사실은 추후 중국 기관들에서 확인됐다.

중태설이 사망설로 바뀐 것은 한국 언론에 의해서였다. 고씨가 병사한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지난 25일 월간조선의 한 중견언론인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 처음 나왔으며 그후 한국 언론 매체들은 26일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을 인용, 비슷한 내용을 전했다.

심지어 워싱턴 포스트도 김정일 위원장의 둘째와 셋째 아들을 낳은 고씨의 사망이 확인될 경우 북한의 후계구도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분석도 곁들이며 사망설을 보도하는등 큰 관심을 보였다.

한국 정보기관은 베이징을 중심으로 고씨의 사망설을 꾸준하게 추적했고, 중국 기관들은 일찌감치 이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가 사망한 13일 주중 북한 대사관을 비롯한 베이징의 북한 기관들에는 침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은 외국 공관의 소수 수뇌부에만 고씨의 사망 사실을 알렸고 이를 극비에 부치라고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베이징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고씨가 사망했다는 소식들이 흘러 나왔고 한국 보도진을 비롯한 각국 취재진은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북한 주재 외국 기관들의 외부 전화 불통, 중국인의 북한 관광 잠정 중단 등 예사롭지 않은 조짐들이 같이 터져 나와 고씨 사망설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

사망 자체는 확실한 것같은데 문제는 정확한 사망시기였다. 여러 정황으로 미뤄 13~16일로 압축돼 갔으나 여전히 정확한 날자가 잡히지 않았다.

중국의 한 정통한 소식통은 고씨가 프랑스에서 암 치료를 받았고, 귀국길에 병세가 크게 위중했다고 확인했다.

다른 소식통은 '아마도' 고씨가 사망한 것같다고 사망 사실을 알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결정적 제보는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왔다. 그는 "13일 새벽 심장마비"라고 짤막하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평소 믿을 수있는 소식통이었다.

북한이 고씨의 사망 사실을 공식 발표하지 않고 있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우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는 많은 여자가 있었으나 정식 결혼식 여부 등 사생활에 대해 공식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김 위원장의 사생활은 그 자체가 극비이기 때문.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재일동포 출신의 고씨는 그동안 세간에 알려진 고(故) 성혜림씨, 김영숙씨 등 김 위원장의 여자들 중 실제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한 사실상 공식 부인이지만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후계자를 둘러싼 권력 암투의 가능성이 외부에서 거론되는 것도 북한 당국으로선 싫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김 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이 낳은 장남 정남(33)과 정철(23), 정운(20) 등 고씨의 두 아들이 김 위원장의 후계자 지위를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아 왔다.

베이징 주재 외국 보도진은 중국의 향후 조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이 어떤 형식으로든 고씨 조문 사절을 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지난 28일 정협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에 도착한 리장줘(李兆작<火+卓>) 정협 부주석과 오는 9월 10일 방북하는 리창춘(李長春) 정치국 상무위원의 활동이 주목을 끄는 것도 바로 그같은 이유에서 이다. 앞으로 북한 당국이 고영희씨의 사망을 언제 어떤 식으로 공식 발표할지 아니면 미공개로 일관할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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