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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핸리키신져
김흥순  |  webmaster@ccnews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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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04  16: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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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리 키신져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 같은 두 얼굴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

"범법(犯法)은 즉각적으로 이뤄지지만 헌법(憲法)을 위반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

'죽의 장막'을 걷어 올린 키신저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주적 인간인가? 독재자보다 더 독재적 인간인가?...

키신저는 독일 퓌르트 출생으로 1938년 나치스의 유대인 박해를 피하여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종군하고, 1943년 미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1954년 하버드대학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62년 같은 대학 정치학 교수가 되었다.
저서 《핵무기와 외교정책 Nuclear Weapons and Foreign Policy》으로 대량보복전략을 비판하면서, 전술핵무기의 한정적 사용에 의한 유연대응전략을 제창함으로써 전략연구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키신저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키신저외교’를 전개해 1971년 7월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하여 닉슨 방중(訪中)의 길을 열었고, 국무장관에 취임, 1972년 중동평화조정에 힘썼으며, 1973년 1월 북베트남과 접촉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등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으로 그 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반면 독재정권을 비호한 정치공작의 장본인이다.
국가안보기록연구소(NSA)에 따르면 키신저는 1976년 콘도르 작전에 대한 미국의 경고를 만류해 사실상 이를 방조했다.
1975년 인도네시아군이 동티모르를 침공, 피의 살육을 벌이기 하루 전 독재자 수하르토와 회담한 것도 그였다.

그가 1973년 미국ㆍ 북베트남(월맹)ㆍ월남의 파리협정 체결 공로로 받은 노벨평화상은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평화상이라는 오점을 남겼다. 그는 올해 90세다. 고해성사를 할 시간도 얼마 없다.

콘도르는 안데스 산악지대에 사는 수리과의 맹금류다.
길이 1.3㎙에 몸무게는 10㎏이 넘는다. 거대한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모습은 하늘의 제왕이라 불릴 만하다. 잉카인들은 콘도르를 죽은 조상이 환생한 것이라며 절대자유의 상징으로 숭배했다.

'엘 콘도르 파사(콘도르는 날아가고)'는 독립영웅의 환생을 바라는 페루 국민의 염원을 담은 토속음악으로, 사이먼&가펑클이 애잔한 선율에 담아 부르면서 유명해졌다.

'콘도르 작전'은 1970~80년대 좌우대립이 극심했던 남미 친미국가들이 공산주의에 공동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전개한 '좌파 때려잡기'였다.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6개국 정보수장들은 1975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콘도르 네트워크를 가동한 뒤 야당정치인, 반체제 인사들을 대한 암살과 납치공작을 자행했다.

1983년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이 종식될 때까지 계속되면서 5만명이 살해되고 3만명이 행방불명 됐으며 40만명이 투옥됐다.

콘도르의 주역은 73년 쿠데타로 집권한 피노체트(2006년 사망) 전 칠레 대통령이었다.
집권 17년 동안 자행된 '더러운 전쟁'으로 3,200명의 민간인이 사망ㆍ실종됐다.

이런 피노체트를 조종하고 지원한 배후가 '미국 외교의 아버지'인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지 워싱턴대는 최근 정부문서를 인용, "키신저가 남미의 첫 민주사회주의 정권인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육군참모총장이었던 피노체트를 앞세워 군사쿠데타를 입안하고 감독까지 했다"고 전했다.

그와 일했던 사람들은 “아첨꾼(flatterer), 따리꾼(courtier)라 말한다. 오랜 친구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그들에겐 그저 ‘키신저도 같은 생각이다’는 홍보거리였을 것”이라고 폄훼했다.

1977년 공직을 떠난 이래 키신저 전 장관은 과거 권력의 중심에 있던 시절을 끊임없이 정당화해 왔다고 주변 사람들은 얘기한다.
3971쪽(전 3권)에 이르는 그의 회고록은 온통 자신을 둘러싼 논란의 과거사를 윤색하는 내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탓에 그는 수많은 적을 만들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뉴욕 뉴스쿨 교수가 쓴 ‘키신저 재판(The Trial of Henry Kissinger·2001년)’은 그의 과거 죄상에 대한 전범 고발장에 가깝다.

유시 한히메키 제네바 국제대학원 교수의 554쪽짜리 본격 연구서 ‘결함 많은 설계사(The Flawed Architect·2004년)’는 그가 얼마나 비밀주의에 집착했는지, 백악관 내부의 권력투쟁에 능했는지를 낱낱이 보여 준다.

2차례나 심장수술을 받았고 양쪽 귀에 보청기를 한 데다 한쪽 눈은 실명 상태인 키신저 전 장관. 하지만 그는 여전히 뉴욕 사교계의 단골손님이고 그 주변에는 정계와 재계, 언론계, 패션계 명사가 널려 있다.

그런 키신저를 활용하는 미국이 남북한을 오가며 무슨 공작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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