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아인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고문·전 국무부 차관보

미국 관리들은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 부부장이 최근 마닐라에서 기자들에게 미국의 대북한 정책이 6자회담에서 ‘주된 걸림돌’이라고 말한 데 대해 놀랐고 또 언짢게 생각했다. 미국은 원하던 다자회담을 일단 성사시켰지만, 회담 참가국들이 저마다 각자의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기 시작했다.

북한 핵문제를 협상에 의해 해결하는 것에 반대하는 워싱턴의 일부 인사들은 6자회담 도중에 북한이 스스로의 함정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기만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은 변덕스런 협상 스타일을 다 보여주었다.

하루는 핵 프로그램을 해체하겠다고 했다가 다음날엔 스스로 핵 보유국임을 선언하겠다고 위협하는가 하면, 또 하루는 다음 회담을 2개월 이내에 갖자고 합의했다가 다음날엔 추가 회담에 관심이 없다고 선언했다.

북한의 행동이 그처럼 수수께끼 같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었는데도 중국은 왜 미국을 적어도 북한에 못지않게 비난한 것일까. 그것은 회담에서 미국의 입장이 북한 못지않게 경직되고 교조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비핵화를 향한 북한의 움직임이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상응하는 병행적 조치와 맞물려나가야 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결정적인 쟁점에서 그랬다.

북한측 발표에 의하면 미국의 제임스 켈리 차관보는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해체한 연후에만 미국이 북한의 관심 사항을 고려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부시 행정부는 조치의 문제에 북한측의 그 같은 설명에 이의를 달면서, 미국이 병행적 신축성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관리들은 6자회담에서 그들의 신축성 암시가 완곡한 것이었다고 인정하면서, 이번에는 핵 프로그램 종결 과정의 완료가 아니라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종결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검증가능한 조치들을 시작한다면 미국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려 애썼다.

만일 미국의 접근에 실제로 변화가 있는 것이라면, 미국의 회담 대표들은 다음 회담에서는 더욱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입장을 표명해야 할 것이다.

물론 다음 회담에서 더욱 구체적인 입장을 보여야 할 나라가 미국만은 아니다. 베이징 회담에서 북한측 발언은 핵심 피하기와 발뺌하기, 걷잡을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찬 것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측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음을 부인하고, ‘핵 억제력’을 가져야 할 필요성만 말하면서(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다던 종전까지의 발언을 반복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종식키겠다는 확약은 피했다(대신 그들은 가령, 자신들의 ‘핵 시설’을 포기할 태세가 돼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북한측이 계속 분명하고도 투명한 자세를 보이지 않은 것은 그들의 의도에 대한 깊은 의구심을 남겼을 뿐이고, 그들이 어떤 일을 하고 무슨 말을 하든 간에 기필코 핵무기를 가지려 하고 있다는 부시 행정부 핵심부의 판단에 더욱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

만일 북한이 정말로 핵 보유국이 되겠다는 돌이킬 수 없이 확고한 결심을 갖고 있다면, 미국으로서는 대북(對北) 압력과 봉쇄와 궁극적인 제거(rollback)를 위한 공세적 정책들을 추구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미국이야말로 ‘주된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우방들에 인식되고 있다면, 미국이 취할 정책에 대해서도 국제적 지지를 별로 못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다음 6자회담을 준비함에 있어 자신의 입장이 강하면서도 합리적인 것이라고 다른 우방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병행적 조치의 원칙을 분명히 수용하면서 아울러 북한의 의도를 정당하게 시험해 보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구체적 제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자회담이 다자간 협상의 이점(利點)을 얻어낼 수 있으려면, 미국이 선택해야 할 접근법은 다자의 압력이 북한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어야지 자신에게 향하게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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