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玄浩 /논설위원

북한이 체제의 운명을 걸고 감행하고 있는 핵(核) 모험에서 궁극적으로 얻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는 그 어떤 대북 협상전략도 효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는 27일부터 열리는 6자회담을 앞두고 한·미·일 3국은 북한의 완전한 핵 포기를 전제로 어떤 형식으로든 북한 체제를 보장해주고 경제지원을 해준다는 방향에서 협상 전략을 가다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북한이 과연 이런 교환조건에 만족할 것인가이다.

북한이 ‘조선반도 핵문제’ 해결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미국의 ‘대(對)조선 적대시 정책’의 철폐다. 이 포괄적인 용어에 담긴 의미를 아주 좁게 해석하면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포기, 즉 불가침 보장이 된다.

북한이 “우리 제도는 그 누구에게서도 담보(보장) 받을 필요가 애당초 없다”고 발끈하는 용어인 체제보장도 불가침과 같은 의미다. 이보다 좀더 넓게 해석하면 대북 경제봉쇄 해제와 경제지원 등이 포함될 수 있다. 한·미·일 3국이 현 단계에서 준비 중인 대북 협상 카드도 이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요구하는 것이 이 정도 내용이라면 북한 핵문제는 처음부터 그리 문제될 게 없었을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지 않는 한 미국이 북한을 먼저 공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경제지원을 얻는 데도 핵은 방해가 됐으면 됐지 득될 게 없다는 사실도 한국의 햇볕정책 등을 통해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북한이 핵을 포기해 버리면 불가침과 경제지원은 보장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북한이 핵모험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요구사항이 이 수준을 훨씬 능가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북한이 온갖 시련 속에서 수십년간 막대한 투자와 모험을 한 끝에 마침내 강력한 대미 협상카드로 만드는 데 성공한 핵무기 프로그램을 불가침 보장과 경제지원을 대가로 완전히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북한은 핵 협상을 통해 미·북 간의 이른바 ‘근본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여기엔 미·북 수교와 주한미군 철수까지 포함된다. 핵을 포기하고 나면 북한으로서는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더 나은 수단을 가질 수 없다. 북한이 핵동결을 약속한 제네바 합의 이후에도 비밀리에 핵개발을 계속해 온 것도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미전략을 북한의 입장에서 옹호해 온 한호석 재미(在美) 통일학연구소장은 “북조선은 ‘하나의 조선’이라는 견지에서 불가침조약의 적용 범위를 북에만 국한하지 않고 남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하여 해석할 것”이라면서 “이는 북한이 ‘미제 침략군’으로 부르는 주한미군이 철거돼야 함을 뜻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의회가 불가침조약을 비준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북한이 이를 요구하고 있는 것도 조약이라는 ‘형식’보다는 미군철수라는 불가침의 ‘내용’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경우 불가침조약은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런 의도는 최근 한국에서 반미(反美)기운과 미군철수 주장이 확산되면서 더 고양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현 단계에서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공식화하지 않는 것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의 무리한 요구가 드러나면서 핵 협상은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미국은 대북 압박을 실천에 옮기려 할 것이고, 북한은 핵무기 보유 선언으로 치달으려 할 것이다. 한국은 내부 혼란과 함께 우왕좌왕할 가능성이 많다. 그 멀고도 험난한 길이 이제 시작되고 있다. /hh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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