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위기의 와중에 미국이 탈북자문제에 적극 나서는 데는 김정일 정권에 압력을 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정권의 기반을 허물겠다는 의도가 배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미국은 미사일이나 마약 수출을 봉쇄하는 등 바깥에서 북한을 조여 나가는 방법과 함께, 고위관리와 과학자들의 탈출을 유도하는 식으로 북한 내부를 흔들어 놓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감지된다.
핵문제를 계기로 한 미국의 북한 다루기가 어디로, 또 어디까지 갈지 짐작하기 어려운 형편이고, 그만큼 한반도는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를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만약 탈북자들의 대규모 미국행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그 충격이 북한 체제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유야 어쨌든 미국의 탈북자 수용 정책은 오갈 데 없는 난민을 구원한다는 인도주의적 명분과 효과 때문에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탈북자들에게는 큰 희망이다. 반대로 헌법상 엄연한 자국민인 탈북자들의 처지를 외면해 온 한국정부로서는 당혹감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탈북자 문제에 대한 한·미·중 3국간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할 것이고, 그 합의와 이의(異議)의 내용에 따라 탈북자 문제의 해법 역시 달라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한국정부가 지금까지처럼 남의 일 대하듯 하거나 북한정권의 눈치를 살피다가는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살 뿐이다. 한국정부로서도 이제 탈북자문제를 인도적 차원을 넘어선 포괄적 대북 전략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핵심 당사국으로서 대안(代案)을 제시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