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십만 명의 탈북자를 미국에 받아들이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워싱턴포스트지(紙) 보도는 이제 탈북자 문제가 인도적 차원을 넘어 미묘한 국제정치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음을 뜻한다.

북핵 위기의 와중에 미국이 탈북자문제에 적극 나서는 데는 김정일 정권에 압력을 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정권의 기반을 허물겠다는 의도가 배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미국은 미사일이나 마약 수출을 봉쇄하는 등 바깥에서 북한을 조여 나가는 방법과 함께, 고위관리와 과학자들의 탈출을 유도하는 식으로 북한 내부를 흔들어 놓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감지된다.

핵문제를 계기로 한 미국의 북한 다루기가 어디로, 또 어디까지 갈지 짐작하기 어려운 형편이고, 그만큼 한반도는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를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만약 탈북자들의 대규모 미국행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그 충격이 북한 체제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유야 어쨌든 미국의 탈북자 수용 정책은 오갈 데 없는 난민을 구원한다는 인도주의적 명분과 효과 때문에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탈북자들에게는 큰 희망이다. 반대로 헌법상 엄연한 자국민인 탈북자들의 처지를 외면해 온 한국정부로서는 당혹감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탈북자 문제에 대한 한·미·중 3국간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할 것이고, 그 합의와 이의(異議)의 내용에 따라 탈북자 문제의 해법 역시 달라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한국정부가 지금까지처럼 남의 일 대하듯 하거나 북한정권의 눈치를 살피다가는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살 뿐이다. 한국정부로서도 이제 탈북자문제를 인도적 차원을 넘어선 포괄적 대북 전략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핵심 당사국으로서 대안(代案)을 제시할 때가 됐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