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斗植 논설위원

이제 북핵 문제는 미지(未知)의 영역으로 접어들고 있다. 외교와 압박, 어느 쪽 방향이든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위기와 반전이 도사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치 북핵 문제는 잊어버린 듯한 조용한 상태가 한동안 계속될 수도 있고, 어느 순간 갑자기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듯한 위기가 올 수도 있다.

지루한, 그러나 섬뜩하기 짝이 없는 거친 말(言)의 공방이 오갈 것이다. 남북한은 물론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 4강들의 복잡한 수읽기와 셈법이 뒤엉켜 누가 우군이고 누가 적군인지를 분간하기 조차 힘든 혼돈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북핵 사태가 어떻게 풀려나갈 것인지 선뜻 장담하지 못한다. 계산이 너무 복잡해서만은 아니다. 앞날을 점쳐볼 수 있는 과거의 자료나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게 진짜 이유다. ‘예측 불가능’이야말로 현재의 북핵 위기에 담긴 유일한 진실인 것이다.

한국 정부가 ‘올 인’ 베팅하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외교적 해법’만 꼼꼼히 따져봐도 과거로부터의 학습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미국과 북한은 둘만 만나 북핵 담판을 할 것이냐(양자회담), 아니면 여럿이 모이는 다자회담을 할 것이냐를 놓고 지리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미국이 5자회담(남북한 미국 일본 중국)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 한, 그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런 유의 다자회담을 통해 북핵이라는 시급한 현안을 풀어본 경험이 없다는데 있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의 4자회담(남북한 미국 중국)은 거의 참고가 되질 않는다. 당시의 4자회담은 어떤 결론을 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 만큼 ‘대화를 위한 대화’의 수준을 맴돌았다.
하지만 북핵 위기의 해법으로 등장한 5자회담은 그럴 여유가 없다.

북한의 핵무장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자회담은 ‘회의는 춤춘다’는 비유가 나올 만큼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그만큼 이 틀에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푼다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다. 마치 회담만 열리면 모든 게 잘될 것처럼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닌 것이다.

외교와 함께 진행될 ‘압박’은 더 예측이 힘들다. 미·일은 내심 압박이 주된 수단이고, 외교는 보조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만약 미국이나 일본 해군이 북한 선박을 나포하고 여기에 북한이 반발한다면…, ‘돈 줄’이 끊긴 북한이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나온다면…, 지금으로서는 이같은 물음에 대답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북한은 이미 유엔 안보리(安保理) 의장 성명이라는 초보적 조치에 대해서까지 ‘무자비한 보복’ 운운하며 반발하고 있다. 북한이 말하는 ‘무자비한 보복’이 뭘 뜻하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단 한번도 제대로 김정일 정권의 의지를 시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답을 모르는 것이다.

한반도의 운명이 한치 앞을 보기 힘든 미로(迷路) 속으로 들어선 셈이다. 이 게임에는 시행착오를 반복할 여유가 많지 않다. 전쟁과 평화의 경계선 위에서 길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도 넉넉지 않다. 북한 핵 프로그램의 제동 장치가 풀려 있는 탓에 자칫하면 ‘핵으로 무장한 북한’과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평화로 가는 길 찾기’는 쉽지 않은 과제인 것이다. 그런데 지난 5월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을 다녀온 뒤, 우리 정부나 국민 모두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 듯하다. 어떻게든 북핵이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낙관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를 지키고 만들어 가려는 고민은 사라지고, 대신 주문을 걸듯 평화만 외치면 모든 게 해결되는 듯한 평화주의가 난무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북핵 사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언제 터져나올지 모르는 위기를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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