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이사기자

주한 미군의 주둔지 조정 내지 병력수준의 재검토―즉 주한미군의 역할 재조정 문제가 구체적 실행에 옮겨지게 됐다. 우선 서울시내에 있는 연합사 및 8군 사령부의 연내(年內) 이동에 이어 한수(漢水)이북 2사단의 후방배치가 한·미 간에 확정된 것이다.

미 국방성의 한 고위 관리는 이것이 한국 내 반미(反美) 분위기의 결과이거나 동북아시아 정책의 후퇴로 비치는 것을 적극 경계했다.

그는 “주한미군의 조정문제는 이미 2년 전부터 검토돼 왔던 것으로 이라크전에서 보았듯이 현대전(現代戰)에서 보병의 역할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군인들의 근무 여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지, 결코 한국 방어임무를 포기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2사단이 DMZ에 밀접해 있어 전쟁발발시 집중적 피해를 입을 것이기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미군을 뒤로 빼놓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했다.

이제 보병이 고지(高地)에 깃발을 꽂아야 전쟁에서 이기는 시대는 지났다. 각종 근대화된 무기와 첨단기술은 인적 자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같은 산악지형에서는 항공모함을 기지로 한 공군력과 해군력의 첨단무기가 보다 효율적이라고 이 고위관리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이 관리는 또 『만일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최초의 희생자는 그가 의정부에 있건, 오산이나 평택에 있건 미군이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군의 주화력(主火力)이 언제건 미군기지를 표적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계철선 논리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현재 2사단은 20여개 이상의 소부대로 분산돼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소요되는 통신과 경비(警備) 등 기지운영이 전투력 손실에 못지않게 엄청나게 비효율적이어서 땅이 비교적 여유있는 한수 이남에서 효율적인 통합운영을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러포트 주한 미군사령관은 지난 4월 의회 증언 현재 주한미군의 기혼 장병 가운데 가족을 동반한 비율이 10%로, 독일과 일본의 70%에 비하면 크게 떨어져 그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어서 이들의 주거시설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한수 이남 재배치가 절실하다고 했다.

이런 설명이 맞는 것이라고 해도 지금 미국이 주한미군 문제에 손을 대는 것은 분명히 시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국방관리는 『그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뿐, 더 이상 언급하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문제는 지금 미국 내에서 거론되기 시작한 「미국 소외론(疎外論)」내지 세계적 반미여론에 대한 성찰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지식인들은 9·11과 이라크 전쟁을 겪으면서 왜 미국이 사사건건 다른 나라의 일과 분쟁에 개입해 동네북처럼 얻어맞고 다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세계인들이 민주와 자유의 상징이요, 가난한 나라들을 돕는 정의롭고 용기있는 나라라고 믿었던 미국은 어디 가고, 군림하고 지배하는 자기중심적인 제국적(帝國的)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일까?』

이런 논의의 밑바닥에는 미국이 자국의 존립에 관계되는 상황이 아니면 세계 곳곳에서 마찰을 일으키는 소지를 스스로 끌어안고 있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여론이 깔려있고, 미국 개입의 첨병노릇을 하고 있는 전세계 주둔미군의 문제는 세계 경찰력에 손상을 주지않는 범위에서 「마찰」을 줄이는 선으로 재조정될 예정이라는 것이 이 논의의 귀결이다.

특히 거기에 더해 보다 적절한 구실을 찾게 된 것이 주한 미군이다. 우선 한국 내에서 반미와 함께 미국에 호의적이지 않은 분위기가 월등히 많아졌다는 변화가 그것이다. 자력(自力)국방의 비용은 부담할 생각이 없이 자주 국방을 얘기하는 감상적인 접근에 부시 행정부는 불만이 있다.

국방성은 원활한 기지운용과 장병의 주거를 위한 시설 내지 땅을 얻을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상황을 개선할 주둔국 정부의 의지가 없는 한 미군은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속내라고 봐야 한다.

결국 미국은 지금 주한 미군을 전략개념의 「변화」를 현실화하는 실험무대로 삼으려하고 있고 한국은 그 「실험」에 명분과 구실을 제공해 주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런 변화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는가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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