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베이징(北京) 3자회담에 참석한 리근(李根) 외무성 부국장을 통해 ‘핵 보유’를 밝힘에 따라 대화를 통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가던 북핵(北核)문제가 또다시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아직은 미국이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으나 ‘악(惡)의 축’ 꼬리표를 떼지 못한 북한의 ‘핵 보유’는 자칫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군사적 수단을 선택하게 되는 극단적 상황까지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왜 ‘대화의 장(場)’에서 무모한 강수(强手)를 두었을까.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일단 북한의 리근 부국장이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한 발언만 놓고,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을 사실로 받아들이긴 이르다는 반응들이다. 정부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일단 이것 역시 ‘협상용’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25일 조선 중앙통신과의 기자회견에서 “베이징에서 열린 조·미회담에서 우리는 쌍방의 우려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새롭고 대범한 해결 방도를 내놓았다”고 밝힌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즉, 북한은 협상을 위해 이 같은 카드를 꺼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리근 부국장이 “핵을 갖고 있다.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대담하게 전환하면 폐기할 수도 있고, 미국측에 넘길 수도 있다”고 한 대목도 역시 ‘협상’ 쪽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란 지적이다. 북한으로선 미국 내에서 3자회담 직전 ‘김정일정권 축출’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뭔가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특히 북한 경제가 작년 7월 1일 조치 이후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핵 협상이 장기화할 경우 불리하다고 판단해 단번에 북핵문제를 타결하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북한측의 의도와 무관하게 ‘핵 보유 선언’은 간단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미국측의 반응이 문제다. 이미 ‘북핵 포기 전 협상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넘지 말아야 할 수준인 ‘레드 라인’을 완전히 넘어선 북한과 다시 대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라크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 내 보수층이 “북한도 이라크처럼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낼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에 앞서 어렵사리 마련된 3자회담이 계속 이어질지도 불투명하다.

이번 회담을 중재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지원’도 예전 같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분명히 밝히고 있어 핵을 가진 북한을 계속 봐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부시 미 대통령은 벌써 “나는 북한으로부터 거부당한 중국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듣기를 고대한다”며 중국측에 태도를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으로선 자칫 ‘후원자’ 하나를 잃게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역시 북한이 핵을 갖고 있다고 밝힌 상황에서 각종 경제 협력이나 지원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당장 27일 평양에서 열리는 10차 남북 장관급회담은 예정대로 갖는다는 입장이나 이 회담에서 또다시 핵문제를 주요 의제로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게 됐으며, 회담 전망도 그리 밝지 못하다.
/김인구 기자 gink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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