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디펜스포럼' 주최 의회 회의 참석차
숄티 회장 면담 후 국정원측과 조율중

황장엽(黃長燁)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지난 4월 16일 방미(訪美) 초청자인 미국의 디펜스포럼(Defense Forum) 수전 숄티(Suzanne Scholte) 회장을 면담하고 오는 6월 중순 방미 일정을 논의한 데 이어 다음 날 미 하원의원 4명과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황 전 비서는 오는 6월 중순쯤 방미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2월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비서와 평소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탈북자동지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황장엽 전 비서가 지난 4월 16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그의 방미 초청자인 수전 숄티 디펜스포럼 회장과 한 시간 반가량 면담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숄티 회장은 황 전 비서에게 ‘이번만큼은 꼭 모시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14일 방한해 하얏트호텔에 투숙한 숄티 회장은 지난 4월 16일 같은 호텔에서 개최된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범국제운동본부’의 발족식에 참석한 뒤 황씨를 면담하고 다음날 출국했다.

디펜스포럼은 지난 3월 초 황씨에게 초청장을 보내 온 데 이어 지난 4월 10일엔 주미 한국대사관에 서한을 보내 황씨의 방미 수속을 밟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 서한에서 숄티 회장은 “황씨가 오는 6월 20일 디펜스포럼 주최로 열리는 미 의회의 국방ㆍ외교정책 포럼에 참석, 북한의 인권과 한국의 평화적 통일 방안에 관해 논의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디펜스포럼은 황씨와 함께 이철승 자유민족회의 대표상임의장도 초청했다.

황씨의 숄티 회장 면담에 대해 잘 아는 이 탈북자동지회 고위 관계자는 “오는 6월 중순에 방미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황 전 비서는 방미하게 되면 현재로선 이 포럼 이 외에 미 상ㆍ하원 합동으로 열리는 북한 청문회에도 참석, 김정일 정권에 대해 증언하거나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담당자들에게 대북 전략에 관한 조언도 할 수 있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황씨는 또, 미국을 방문하면 무엇보다도 한ㆍ미 관계의 강화 필요성을 역설할 것으로 보인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황씨는 숄티 회장과의 면담 시간의 상당량을 할애해 한ㆍ미 동맹의 위기에 대해 우려했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그는 “황씨가 숄티 회장과의 면담에서 한ㆍ미 동맹 관계가 무너지면 남한도 견디지 못하는 만큼 그런 방향으로 걱정하고 대화를 나누었다”고 밝혔다. 황씨의 신변 안전을 맡고 있는 국가정보원도 그동안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그의 방미에 동의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관계자는 “국정원이 황씨의 숄티 회장 면담을 허용하고 이 면담을 위해 경호원들과 통역까지 지원했다”면서 “이 점에서 국정원이 이번에는 황씨의 방미를 허용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태도 변화는 황 전 비서가 방한 중이던 미국 의원들과 만날 수 있도록 허용한 데서도 엿보인다. 황씨는 지난 4월 17일 하비에 베세라ㆍ마들린 보달로ㆍ에드 로이스ㆍ아담 시프 등 4명의 미 하원의원들과 면담했다고 이 탈북자동지회 고위 관계자는 전했다. 이 날 황씨가 이들 미 의원들과 나눈 대화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수전 숄티 회장과 나눈 대화 내용과 비슷할 것으로 관측됐다.

이들 미 의원은 황씨를 면담하기 하루 전날 열린 탈북자 지원 국제의원연맹(IPCNKR) 창립총회에 참석, 한국(22명)ㆍ일본(3명)ㆍ영국(1명)ㆍ몽골(1명) 의원들과 탈북자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고 대책 마련을 해나가기로 합의했다. 1997년부터 디펜스포럼이 초청하면서 논란을 빚어 온 황씨의 방미 실현 여부는 이번에는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대중 정부가 황씨의 방미를 불허했던 것은 황씨가 미 의회 청문회에서 김정일 정권의 본질을 폭로하고 비판할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答訪)이 무산될 것으로 우려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盧武鉉) 정부로서는 그 같은 부담이 없는 데다 그동안 대미 수평적 관계를 주장해 온 만큼 황씨의 방미를 허용할 개연성이 적지 않다.

현재 황 전 비서는 북한의 신변 위협 때문에 서울 내곡동 소재 국정원 청사 내 안가(安家)에서 생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최근 다시금 방미 의지를 다지게 된 데는 북한의 신변 위협이 여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이교관 주간조선 기자 haed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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