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말 쯤 2003년 한국 문학사에 남을 새로운 기록이 추가된다. 1004명에 이르는 남·북한 현대문학 작가들의 작품을 총망라하는 통일문학전집 발간 사업이 이때 쯤 완성을 목표로 최종 교열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1945년 독립 이후 2000년 말까지 남과 북에서 발표된 대표적 작품을 하나의 전집에 담는다는 야심찬 계획이 수립된 것은 지난 1999년. 차범석 당시 문예진흥원장의 발의에 의해 첫 발을 내디딘 이후 4년 여 만에 이루는 결실이다. 분단 이후 북한의 문학작품이 공식적으로 남한의 정부기관에 의해서 발간되는 것이 처음인 것은 물론, 남북한의 대표적 문학 작품들이 ‘전집’의 형태로 묶이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남북 문학을 아우르는 거대한 스케일에 걸맞게 전집은 수록 작가와 작품 수, 원고 분량에 있어 모두 신기록을 작성했다. 우선 수록된 작가만 해도 1004명으로 전례가 없다. 이중 남측 작가가 746명이고, 북측 작가는 258명. 수록 작품도 무려 5382편(남한 작품 4406편, 북한 작품 976편)에 이른다. 원고 분량도 200자 원고지 40만장으로 이 또한 신기록. 신국판 크기의 300쪽 짜리 장편소설 한 권이 대략 원고지 1300장 분량인 점을 감안할 때, 단행본 300권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이다.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문학평론가 김윤식 전 서울대 교수는 “작가라는 이름이 붙은 사람과 그들의 작품이라면 모든 것을 싣자는 각오로 자료를 모았다”며 “이때문에 예상보다 분량이 크게 늘어나 책이 아닌 CD롬 형태로 전집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전집은 시와 소설, 희곡, 평론 등 4개 분야의 작품들과 장르별 해제집으로 구성돼 있다. 김윤식씨를 비롯 권영민(서울대), 이선영(연세대), 서연호(고려대), 임헌영(중앙대), 김재용(원광대) 교수가 1차 기획위원으로 참여했으며, 후에 유민영(단국대), 최동호(고려대) 교수가 합류했다. 각 장르별 남·북 문학의 50년 성과를 다룬 총론 부분은 정호웅(남한 소설), 김윤식(북한 소설), 서연호(남한 희곡), 유민영(북한 희곡), 권영민(남한 평론), 신두원(북한 희곡)씨 등이 나누어 집필을 맡았다.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북측도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기획위원들은 북한 사회과학원과 김일성종합대학 등에서 발간한 문학사 관련 자료와 북한 조선문학예술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문예 월간지 ‘조선문학’ 등을 참고해 전집에 담을 북한 작가와 작품 목록을 작성해, 북측에 보냈다. 북측에서는 “숙청된 문인들의 작품도 보내 달라”는 요구까지 들어줄 만큼 적극적으로 응했다는 것.

문예진흥원측은 관련 연구소와 학교 등 북한 자료 취급을 인가받은 전국 157개 기관에 이 CD롬을 배포한다는 계획. CD롬은 현재 교정작업을 거쳐 빠르면 4월중 햇볕을 보게 된다.

김윤식 교수는 “독일은 통일 이전에도 모든 독일인의 사랑을 받은 동독 극작가 브레히트의 전집 40권을 동·서독이 함께 간행했고, 동·서독 정상회담에서 양쪽에서 각각 발간된 ‘괴테 전집’을 교환했다”며 “이번 전집 발간이 남북한의 문학적 업적을 정리하고 동질성을 확보하는데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金泰勳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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