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외환은행을 통해 제공했다는 `절차상 편의'란 과연 무엇일까.

금융계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국정원이 통상적으로 운용하고 있던 외환은행 `비밀계좌'를 통해 문제의 2천235억원을 환전.송금해줬다는 의미로 보고 있다.

특히 엄격한 서류요건이 필요한 환전절차에서 국정원이 법규나 절차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일정한 역할을 해주거나 모종의 형태로 `보증'을 해준게 아니냐는 분석이 유력시되고 있다.

현대측이 독자적으로 2억달러를 환전.송금 하려면 절차상 문제와 시간이 걸리는 만큼 국정원이 `신속하고 안전한' 송금수단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현대측이 2천235억원을 달러로 바꿔 해외에 송금하는 것은 `외국환 거래업무 취급지침'상 거주자에게 내국지급수단을 대가로 외국환을 매각하는 경우에 해당하며 이때는 `인정된 거래'임을 입증하는 서류를 제시해야 한다.

이에따라 당시 서둘러 북한에 돈을 송금해야할 처지였던 현대측이 국정원에 도움을 요청했고 국정원은 합법적인 요건의 서류를 급조해 제시하거나 은행측에 "거래를 보증한다"는 확약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국정원이 이번 거래가 합법적인 외양을 갖추도록 하는 방법을 은행측 고위관계자와 사전 협의하거나 묵인을 유도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대해 외환은행 관계자들은 "그런 거래가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도 없지만 그런 거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법규나 절차상 하자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해 환전.송금자체가 합법적인 형태로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선창구에서 환전.송금하는데 거래자가 어떤 용도라고 소명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불법적인 용도임을 알면서 환전해줄 은행원은 아무도 없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과거부터 외환은행에 해외송금 계좌를 개설.운용해왔기 때문에 해외송금에 관한한 어느정도 `특수관계'로 볼 수 있다는게 금융계의 분석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80년대 이전에는 환전.송금.수출입업무를 외환은행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정원이 외환은행 계좌를 해외송금 루트로 활용했고 그 관행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정원과 거래가 많은 외환은행 일부 지점이나 본점 영업부의 경우 국정원 직원이 신분을 밝히고 일정한 형식의 공문을 제시하면서 "국가 일이니 협조해달라"고 요청하면 환전.송금과정에서 가급적 협조해주는 관행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국정원이 제공한 '절차상 편의'에는 2000년 6월 당시 금융권으로부터 '비정상적'인 자금 차입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현대 계열사에 대해 산업은행 등이 대출하도록 뒤를 봐준 것도 포함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북 자금지원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현대상선과 현대건설 등은 당시 모두 부실에 따른 자금난으로 스스로의 능력으로 자금을 조달해 북한에 넘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절차상 편의'란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호한 표현"이라며 "청와대나 국정원 등 정부 관계부처의 압력이 없었다면 산업은행이 앞뒤 가리지않고 거액을 내줬을 리가 없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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