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14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의 전날 한·미 및 남북관계 발언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노 당선자는 양대 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과 견해가 다른 것은 달라야 한다.…안 다르면 결과적으로 전쟁을 감수하자는 것이냐” “(대북지원은) 더 이상 퍼주더라도 투자해야 한다.…미국이 이래저래 말하면 어렵겠지만 한국민이 확고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한국경제에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에 대해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은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북한이 ‘전쟁’을 갖고 위협하면 모든 것을 다 바치자는 얘기냐 뭐냐”면서 “대통령 당선자로서 신중치 못한 언행”이라고 말했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북한 핵문제가 유엔 안보리로 넘어가 미국 및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중요한 시기에 적절하지 못한 발언”이라며 발언 시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성급한 발언은 문제를 지혜롭게 풀기보다는 오해를 부추겨 사태를 꼬이게 할 뿐”이라고 말했다.

당 북핵조사특위 위원인 박진(朴振) 의원은 “전쟁 아니면 대화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문제”라면서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선택 가능성을 줄여 스스로 발목을 잡는 행위”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미국의 대북 정책은 아직도 수십개 이상의 카드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당선자는 자신의 말 한마디가 불러올 파장과 오해를 충분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온 국회 외교통상위 소속 이부영(李富榮) 의원도 “한국과 미국의 국가 이익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엔 일리가 있으나 외교적 소신과 외교적 발언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특히 “한국경제가 어려워지더라도…”란 노 당선자의 발언은 예기치 못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심각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박종희 대변인은 성명에서 “민감한 시기, 민감한 사안에 대한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라며 “인화성이 강한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을 당선자가 언급하는 것은 국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 安容均기자 ag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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