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지난 2000년 6월 북한에 송금한 2235억원이 6·15 남북정상회담의 대가였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방증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고 있다.

◆ 계약서도 없이 2억달러 지급

현대상선은 지난달 28일 감사원에 2235억원의 사용처를 설명하며 ‘개성공단 조성, 통신사업, 금강산 관광대가 등 대북(對北) 7대 사업에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현대상선은 정몽헌 회장과 송호경 조선아태평화위 부위원장 사이에 체결된 기본협약서 1부와 세부협약서 7부를 제출했다.

하지만 현대상선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8부의 협약서 가운데 가장 먼저 작성된 협약서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인 8월에 체결된 것으로 드러나 2억달러가 7대 대북사업용이라는 현대측의 주장은 근거가 없어졌다.

현대상선이 계약서 한 장 쓰지 않고 불확실성이 가득찬 북한에 2억달러라는 거금을 몰래 보내준 것은 DJ정권의 요구나 보장이 없이는 기업 관행상 절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재계의 일반적인 지적이다.

“2억달러는 현대의 대북 7대 사업 독점계약권료였다”는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의 그동안의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게 됐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8월 남한 언론사 사장 방북단을 맞아 “현대측에 개성관광단지와 공업단지를 꾸밀 수 있도록 개성을 줬는데, 이건 6·15 남북정상 공동선언의 선물이다”고 말했었다.
/ 韓在賢기자 rookie@chosun.com

◆ 남북정상회담 하루 연기된 것은 송금 지연 탓?

일요일이던 2000년 6월 11일 오전 청와대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은 “남북정상회담이 12~14일에서 13~15일로 하루 연기됐다”고 발표했다. 정상회담 출발을 딱 24시간 앞둔 시각이었다. 정부당국의 공식 설명은 “북한에서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요청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은 그러나 방북 첫날인 13일 백화원초대소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외신들은 미처 우리가 준비를 못해 (김 대통령을 하루 동안) 못 오게 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고 말해, ‘준비미흡’ 때문이 아님을 지적한 바 있다. 그래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미측의 위성을 통한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북측이 전격 연기를 제안한 것이란 설도 나왔다.

그러나 야당은 국회 등에서 “정상회담이 예정보다 하루 늦어진 것은 (북측에 주기로 한) 돈 중 1억달러를 마저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우리 측은 부랴부랴 ‘미수금’을 보냈고 북측은 월요일인 12일 추가로 돈이 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하루 연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측은 또 정상회담 사례금은 한 차례에 건너간 것이 아니고, 이해 4월 8일 박지원(朴智元) 당시 문화부장관이 남북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발표하기 이전부터 몇 차례에 나뉘어 전달됐다고 주장해 왔다.
/ 金民培기자 baibai@chosun.com

◆ 마지막 송금은 2000년 6월 12일?

현대상선은 2000년 6월 7일 산업은행에서 4000억원을 대출받은 뒤 이 중 2235억원을 다음날 입금했다가 6월 10일을 전후한 시기에 이 자금을 미화 2억달러로 환전한 것으로 금융권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어 이 돈을 나누어 홍콩 등 제3국을 경유해 북한측 계좌에 송금했으며, 마지막 잔금이 북측계좌에 입금된 게 6월 12일일 것이란 관측들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의 역할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다만 당시 2235억원의 송금이 남북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다급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정상적인 절차 대신 국가정보원을 통한 ‘급행선(急行線)’을 이용한 것 같다고 신 여권 관계자들은 말한다.

노무현(盧武鉉) 당선자측의 한 핵심관계자는 이미 지난달 말 “국가정보원도 환전과정과 송금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안다”면서 “이 과정에서 국정원 계좌나 국가 예산이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청와대나 정부 당국이 알 수밖에 없었다”고 확인한 바 있다. 이후 미국 CIA가 홍콩 마카오 등지에서 거액의 달러가 움직이는 과정을 추적했다는 설도 파다하게 나돌았다.
/ 曺熙天기자 hcc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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