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4시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10층. 설 연휴를 불과 하루 앞두고 감사원이 번개불에 콩 볶아 먹듯 ‘4000억원 북한 비밀 송금’에 대한 특감 결과를 발표했다. ‘4000억원 중 2235억원(2억달러)이 개성공단사업비 등으로 북한으로 갔다’는 것이 골자였다.

하지만 석 달 넘게 실시됐던 감사원의 4000억원 특감은 ‘부실(不實) 감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9월 25일 이 문제가 처음 터진 이후 거짓말과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현대상선이 관련 자료를 제출한 시기는 넉 달 뒤인 지난달 28일 오후였다.

그러나 감사원은 현대측의 자료를 제대로 따져 보지도 않고 이틀 만에 “2억달러가 개성공단사업비 등 남북 경협사업에 투자된 것으로 보인다”며 현대측 설명을 100% 수용했다.

감사원은 또 불법(不法)이 드러난 산업은행 경영진을 고발하지도 않고 사실상 면죄부를 주었다. 한술 더 떠 이종남(李種南) 감사원장은 4000억원 사건의 당사자일 수 있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감사 결과를 사전 보고하는 등 ‘독립적인 감사기관’으로서의 기본 책무마저 저버렸다.

이번 대북 비밀 지원 사건은 이제 겨우 ‘빙산의 일각’이 드러났을 뿐이다. 2억달러는 진짜 경협자금인가, 아니면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북한 정권에 바친 뇌물이었는가? 대북 비밀 지원자금은 2억달러가 전부인가? 국가정보원은 송금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현대그룹은 2억달러의 지원 대가로 남북한 정부로부터 무엇을 약속받았는가? 산은의 거액 대출을 실질적으로 지시한 실세는 누구인가 등등 핵심 의혹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통치권’, ‘정치적 해결’ 운운하며 사건을 덮자고 하는 것은 본말(本末)이 뒤바뀐 코미디 같다는 생각이다.
/ 黃順賢·경제부기자 icaru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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