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에서는 탈북자 김군일(20세·1997년 탈북)씨와 이근혁(19세·1998년 탈북)씨가 북한의 인권실상과 탈북자들의 현실에 대해 증언했다.

▲김군일

고등중학교(우리의 중·고) 6학년 때부터 장마당에 나가 얻어먹는 생활을 했다. 1996년 6월 아버지는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아버지 친구 소개로 중국에 가면 잘 살 수 있다는 정보를 얻은 뒤 3~4차례 두만강을 건너면서 식량을 구해 가족들을 먹여살렸다. 중국 생활은 북한과 너무나 차이가 나 탈북을 결심했다. 그러나 탈북 후 친척이 마련해준 숙소도 안전하지 못해 어떻게 알았는지 북한 보위부 사람들이 들이닥쳤는데, 나는 한 발 앞서 탈출해 한국 인권단체 선교사를 만나 국내에 입국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탈북자들이 너무 마르고 외모가 금방 표시가 나서 잡으러 온다고 해도 도망갈 수가 없다. 친척들도 탈북자 보호사실을 중국 당국이 알면 처벌받기 때문에 끝까지 보호해주지 못한다.

▲이근혁

인민무력부 군의관 대좌였던 아버지와 김책공대를 졸업한 어머니 덕에 평양에서 토대가 좋게 자랐다. 그러나 아버지가 발언상 과오로 평양에서 쫓겨나면서 끼니를 걱정하게 됐다. 평양에선 있는 식량배급이 지방엔 없었다. 굶어 죽는 사람은 흔했고 아이들이 구걸이나 나무를 팔아 생활을 꾸려가는 모습에 충격 받았다. 북한에 평양이란 나라와 평양 아닌 나라가 존재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94년, 13세부터 장사를 시작하면서 탈북을 결심했고 조·중 국경을 5회 넘나들며 3년간 준비했다.

탈북자들의 중국생활도 비참했다. 여성들은 팔려다니고, 남자들은 중노동에 시달리고, 어린이들은 인간 이하의 천대를 받아가며 구걸하는 모습에 피눈물이 났다.

/윤정호기자 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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