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앞날이 밝지 않다. 하반기 들어 경기 하강 조짐이 두드러지면서 생산, 투자, 소비 등 실물경제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으며 내년에도 대내외 경제여건이 불투명해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 같은 위기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국내외 석학·경제 전문가들과의 연속 인터뷰를 통해 그 해법을 찾아본다. /편집자

대담:김광현

―작년까지 괜찮았던 우리 경제가 올 하반기 이후 위기설에 시달리는 원인이 뭐라고 보십니까?

“정부는 1~2달 전까지만 해도 ‘경기만 연착륙하면 우리 경제는 이상이 없다’고 국민들에게 장담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별다른 설명 없이 ‘위기 상황이 우려된다’며 말을 바꿨습니다. 이렇게 말이 바뀐 이유는 현 경제팀이 현실경제에 대한 명확한 문제인식을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1월 3일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합니다. 특히 해외 투자자들의 눈초리가 식어가고 있습니다. 외환 보유고가 900억달러를 넘지만 환율이 불안한 것도 한국 경제 전망과 운영 방식이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IMF 경제위기를 초래했던 경제정책 당국의 상황 인식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큰 원인입니다. ”

―경제정책 당국의 상황인식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경제정책 당국이 일시적인 경제 현상을 보고 마치 구조조정이 다 된 것처럼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이 거의 끝난 것처럼 말했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요즘 다시 ‘구조조정이 미진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정부는 ‘내년 2월까지 구조조정만 마치면 경제가 다시 좋아질 것’이라고 장밋빛 전망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과연 구조조정이 내년 2월 말까지 진짜 끝날지, 구조조정이 시한을 정해놓고 한다고 제대로 된 성과를 낼지는 의문입니다. 최근에는 경기가 내년 하반기에나 좋아질 것이라고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경제정책 당국은 보다 냉철하게 정책 실패를 반성해야 합니다. ”

―작년 대우가 무너지고, 올해는 현대가 위기에 빠졌습니다. 이처럼 대기업의 부실이 자꾸 늘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공적자금(공적자금)은 금융기관을 통해 부실 기업에 들어가는 정부 보조금입니다. 구조조정은 기업체 가운데 살 곳과 죽을 곳을 명확히 가리는 작업입니다. 특히 정부는 공적자금을 쓰며 어떻게 한국 경제의 효율성을 높일지를 염두에 둬야 합니다. 한국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지 못하는 기업에 공적자금만 쏟아 넣으니까 돈은 돈대로 들고, 기업은 기업대로 부실해지는 겁니다. ”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건설 문제를 해결하는 바람직한 해법은 무엇입니까?

“한국 경제가 건실한 안정성장을 하려면 과거 관행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경제정책 당국은 과거 관행에 사로잡혀 본질적인 수술을 미루고 있습니다.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이런 기업들은 나중에 반드시 문제를 일으킵니다. 우리 재벌들은 아직도 비용(코스트)개념이 제대로 박혀 있지 않습니다. 사업을 벌이면 으레 금융기관이 돈을 빌려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재벌들이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기업 운용을 하다 보니 현대건설 같은 사례가 발생합니다. ”

―구조조정에는 필연적으로 실업이 따릅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경제정책은 사회 안정도 생각하고 정치적인 배려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근로자들도 당장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회피하면 더 큰 비용을 치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한국 경제가 이런 비효율을 계속하다가는 장기적으로 살아 남을 수 있겠습니까. ”

―정부가 경제보다는 북한문제에 더 신경을 쓴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북한은 자체 능력으로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분단국가인 우리는 경제력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북한 주민들의 생존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지원은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전제는 남한이 지금 경제적으로 북한을 도울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죠. 북한에 투자하는 기업도 수익률을 우선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능력을 넘어서 국가사업을 대행하는 기업은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독일의 경우 서독 기업들은 통일 이후 아직까지 구(구)동독 지역에 투자를 꺼리고 있습니다.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

―‘복지’와 ‘경쟁력’은 상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우리나라는 아직 복지가 경제를 압박하는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전 세계 추세를 보면 성장을 강화해 복지를 뒷받침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뒤늦게 복지제도를 도입하면서 다른 선진국이 이미 (검증을 거쳐) 폐기한 정책까지 수용한다면 문제입니다. 복지제도가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려선 안됩니다. ”

―한국전력의 민영화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공기업 개혁의 방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공기업도 기본적으로 사기업과 다를 게 없습니다.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이 나는 경영을 해야 합니다. 한국전력이나 한국통신은 주식이 상장돼 있으므로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민영화(민영화)는 정치적인 측면이 있어 좀더 신중히 검토해야 합니다.

공기업 민영화가 국부(국부)유출이라는 일부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만일 한전이 민영화돼 외국인투자가에게 넘어가고, 이들이 이윤추구만 생각해 전력요금을 책정할 경우 국가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장은 엄청날 것입니다. 쿠바가 공산화되기 직전 수도인 아바나의 전화·전력·수도산업을 모두 외국인 기업이 소유했고, 쿠바 국민들의 생활이나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공기업을 누가 소유하느냐보다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개혁의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

―최근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경기부양책을 쓸 필요가 있다고 보십니까?

“현재 경제정책이 제대로 기능만 한다면 내년에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경우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본질적인 구조조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정(재정)을 통해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해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일본은 90년대 들어 계속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10차례에 걸쳐 총 123조엔의 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경기부양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91년 이후 일본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3%에 불과합니다. 다만 경기부양이 꼭 필요하다면 과거 방식의 공공투자보다는 신(신)산업에 대한 R&D(연구개발)나 교육분야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최근 40조원의 추가 공적자금 투입이 결정돼 재정부담은 갈수록 무거워질 전망입니다.

“그동안 우리 재정이 건전했던 것은 재정의 역할을 금융이 대신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재정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문제는 공적자금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정부 태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98년에 64조원이면 기업·금융 부실을 해결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다시 50조원이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98년에는 무슨 산출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했고,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지 설명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재정 수요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공적자금 이자까지 가세해 결국 한국 경제의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일본은 (방만한 재정운용으로) 국가채무가 GDP(국내총생산) 대비 135%에 달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계속적인 공적자금 조성에 동의해줄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

―최근 위기국면은 대통령과 정부의 리더십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대통령보다 근본적으로 경제정책 당국자들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경제 관료들은 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가 다소 나아지자 구조조정이 다 됐다는 안이한 판단에 빠졌습니다. 그런 안이함이 금년 8월까지 계속돼 우리 당국자들은 그때까지 경제상황이 심각하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관료들은 9월 중순 이후, 소비 수요가 꺾이고 체감경기가 나빠지자 그때부터 난리를 피웠습니다. 그들은 또 다시 ‘내년 2월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경제 원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일정을 못박아) 단정적인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조조정은 끝없는 연속입니다. 미국도 레이건 행정부 들어 시작한 구조조정이 10년 가까이 지속됐습니다. 경제정책 당국자들이 일시적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단정적인 이야기를 남발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들의 불신만 쌓는 일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경제를 챙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

/정리=조희천기자 hcc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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