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국전쟁의 발단과 확전은 정치 실패의 산물이었다”며 “전쟁 연구는 기본적으로 평화이론, 평화교육, 평화철학을 도출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했다./조선일보 DB사진
"북 토지개혁 미미"...6.25는 계급전쟁 아니다'
박명림 교수, 전통.수정주의 넘어 새로운 분석

맨하탄 53번가 뉴욕 공립 도서관의 한국 서가에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의 양지’(Korea’s Place in the Sun·1997)와 AP통신 기자들이 쓴 ‘노근리 다리’(The Bridge at No Gun Ri·2001)가 꽂혀있다.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을 지주와 소작인의 계급갈등에서 비롯된 내전으로 규정한 수정주의 학자이고, ‘노근리 다리’는 미군이 한국 전쟁기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자행한 학살을 고발한 책이다.

한국 전쟁의 일면만을 강조하는 이 도서관 장서목록은 내년쯤 한국인 연구자에 의한 영문서가 들어오면 균형을 잡을 것같다. 한국전쟁을 스탈린의 공산적화전략으로 보는 전통주의와 계급갈등으로 보는 수정주의의 이념 대립을 뛰어넘어 보편적 시각을 제시한 박명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1996)이 국제교류재단에 의해 영역중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 아래서 한국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국내파. 박사학위 논문을 고쳐쓴 이 저서로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박 교수가 이번에는 6·25 발발부터 1951년 1·4 후퇴까지 초기 6개월간의 경과를 정치하게 분석한 저서 ‘한국 1950-전쟁과 평화’(나남)을 펴냈다.

86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책에서 그는 북한 인민군 내부문서와 미 육군 참모부 극비문서 등 철저한 사료고증을 통해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 전쟁이 김일성·박헌영의 비현실적 급진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한 박 교수는 “통일을 목표로 시도된 전쟁은 통일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분단을 고착시켰고, 남한에 공산체제를 이식시킨 것이 아니라 반공체제를 강화시켰다”며 “근본주의적 급진주의는 혁명이 아니라 반혁명에, 진보가 아니라 반동에 기여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한국전쟁’은 단지 그 발단과 경과 뿐 아니라 남·북관계, 한·미관계, 해방 전후사, 나아가 역사를 보는 사관(史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가 얼키고 설켜 있는 현대사 연구의 거대한 산이다. 그런 만큼 박교수의 주장들은 논의 수준을 한차원 높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논쟁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 한국전쟁·한국현대사 연구에 대한 성찰

▲ 한국전쟁 연구 비판
박 교수는 “김일성의 남침을 규명하고 비판하면 보수적이고, 이승만의 통일정책을 비판하면 진보적인 것처럼 이해됐다”며 학계의 ‘이상한 균형감각’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학살의 문제 역시 일부는 북한에 의한 학살만을 문제삼는데 반해, 반대의 일부는 남한에 의한 학살만을 문제삼는다”면서 이른바 ‘비판적 관점’의 연구자들에서조차 학살과 관련한 사회주의체제의 궤적을 비판적으로 탐구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고 비판한다.

전쟁 원인과 관련해서도 소련과 중국이라는 외부요인을 먼저 끌어들인 북한이 미국의 개입을 들어 북한에 의한 통일 시도를 정당화하거나 그 실패를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 북한에 대한 무비판

그는 “남한 박정희 체제를 비판하는 민족주의 담론에서 북한의 반인권과 반민주의 근거가 되는 김일성·김정일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은 찾기 힘들다.

남한 문제에 대한 개입이 실천일 때, 북한 체제 문제에 대한 방기가 실천일 수 없다”며 진보학계의 북한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를 지적한다. 한걸음 나아가 그는 “건국 초기의 북한이 이미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의 관점에서 대안이 되기 어려웠다”고 못박는다.

▲ 한국전쟁 당시의 학살
박 교수는 “상대 진영을 똑같이 해방의 이름으로 점령했을 때 참혹한 학살이 남과 북 모두에 의해 전개됐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의 학살만을 비판할 경우 그 비판이 갖는 이념적 편향성을 지우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북한의 학살사례는 미군·남한의 학살사례를 공격하는 데 대한 반대증거로 제시된다. 북한도 학살했기 때문에 미군·남한의 학살 역시 이해될 수 있고, 정당할 수도 있다는 전제가 들어있는 이 시대착오적 논리를 우리가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있을 것인가”하고 지적한다.

박 교수는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의 보편적 관점에서 학살을 비롯, 한국전쟁에 접근해야한다고 했다.

■ 새로운 해석

▲ 인천 상륙작전 성공은 미국의 압도적 우위때문
박 교수는 인민군 내부 기밀문서에 근거,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것은 통설처럼 북한군이 전격적 기습에 대비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압도적 힘의 우위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적어도 50년 8월28일부터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최고지휘부는 인천상륙작전(9월 15일)에 대비한 방어작전을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것.

▲ 한국전쟁은 계급전쟁 아니다
한국 전쟁은 기본적으로 토지를 둘러싼 계급전쟁이란 브루스 커밍스 주장에 대해 박 교수는 인민군 점령하에 이뤄진 토지개혁 실태를 제시한다.

북한이 50년8월 충북 보은군을 점령한 후 분배한 토지는 농가당 0.36 정보로 전쟁전 이승만 정권하에서 분배한 0.38정보보다 오히려 적다는 것. 여기에 낱알 하나까지 세면서 예상 수확량을 판정하는 현물세의 비인간성은 농민들의 지지를 떨어뜨렸다.

따라서 북한이 시도한 1950년 여름의 남한 토지개혁은 ‘지상(紙上)혁명’일수는 있어도 실제의 ‘토지혁명’은 아니었다고 본다.

▲ 신천 학살사건은 좌우익 갈등 때문
북한은 1950년 가을 황해도 신천에서 군민 12만명중 4분의 1인 3만5383명이 미군에 의해 학살됐다고 주장하면서 반미사상을 교육하는 박물관을 세웠다.

박 교수는 당시 사건에 참가한 남한 우익의 기록을 인용, “신천 학살사건은 미군이나 국군의 학살이 아니라 좌우투쟁의 산물이었다”고 결론내린다. 전쟁 이전 민족주의 세력이 강력했던 황해도 지방에선 전세가 역전되면서 토착 우익들의 저항이 거세졌고, 이런 우익들의 반공 봉기 과정에서 좌우익의 상호 살육전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 金基哲기자 kich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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