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유엔사와의 실무적 절차 문제를 트집 잡아 경의선과 동해선의 지뢰 제거 작업을 중단시키면서 한편으로는 금강산 관광특구를 지정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 의도가 빤히 들여다보이는 치졸한 행태다.

북한은 비무장지대 안의 지뢰 제거 작업을 상호 검증하기 위한 관계자들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유엔사가 승인한 사실을 유엔사의 ‘간섭’이라고 강변하면서 검증 작업은 물론 우리 측의 실무접촉 제의마저 거부해 버렸다.

현행 정전협정은 군사분계선을 통과할 때는 반드시 군사정전위의 허가를 받도록 명시하고 있음에도 북한이 이 같은 절차를 노골적으로 거부한 것은 정전협정 자체의 무력화를 노리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남북 군사보장합의서의 규정을 놓고 해석상의 논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북한이 유엔사의 승인마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억지일 뿐이다.

북한의 의도는 정전체제에 지속적인 타격을 가함으로써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유도하는 한편, ‘남북 민족 간에 잘 돼가는 일을 미국이 방해하고 있다’는 선전효과를 고취해 한국 내 반미감정을 부추기려는 것이다.

북핵(北核) 문제와 관련해 ‘전 민족에게 보내는 호소문’ 등을 통해 ‘민족공조’를 외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게다가 금강산 관광특구 지정은 대남(對南)·대미(對美) 전략을 분리하면서 동시에 실리도 챙기려는 다목적용이다.

북한이 이처럼 제멋대로의 대남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데에는 현 정부의 ‘무조건 북한 도와주기’ 탓이 크다. 지뢰 문제만 해도 초반에 현 정부가 북한보다 오히려 유엔사를 설득하려는 태도를 보인 것이 북한의 억지를 더욱 키운 측면도 없지 않다.

지금 남북관계는 북핵이라는 잠재적 폭발물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 북한이 상황을 오판하고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일에서 현 정부의 분명하고 단호한 대처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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