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정부가 직접 대북 설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가 느긋하게 앉아 있을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 핵문제를 평화적 대화로 해결할 시간이 3주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판단때문이다.

지난 14일 KEDO 집행이사회가 `12월분부터 중유 북송 중단'과 경수로 사업 재검토 결정을 했으나, 12월분 공급 여부는 새달 11∼12일께 결정할 예정이어서 3주가 남은 셈이다.

특히 정부가 주목하는 것은 KEDO 결정 이튿날 나온 부시 대통령의 대북 성명.

이 성명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핵개발은 묵과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미국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재확인하고 `북한과 다른 미래를 희망한다' 고 천명했다. 이 대목은 북한의 대응 여하에 따라서는 핵문제와 관련한 관련국의 우려를 해소하고 과감한 북미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제의로 정부는 보고 있다.

비록 북한이 17일 평양방송을 통해 "북조선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미국 대통령 부시의 발언은 뒤짚어 놓은 침략타령"이라고 일축하고 나섰으나, 정부는 아직 북한 당국의 책임있는 공식 대응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북한이 그동안 북미관계를 개선할 기회가 몇차례 있었으나,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시기를 놓쳤다고 안타깝게 생각해왔다.

통일부 당국자는 18일 "북한은 그동안 여러차례 타이밍을 놓쳤다"며 ▲클린턴 대통령 재직 말기 ▲2001년 6월 부시 대통령의 대북 대화 발언 등을 예로 들었다.

이번에도 북한은 핵포기를 전제로 과감한 북미관계 개선 의지를 천명한 부시 대통령의 `새로운'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시간을 보내다가 자칫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보고 정부는 가능한 모든 채널을 가동, 대북 설득에 총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다.

일단 이날부터 사흘간 금강산에서 열리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 실무접촉 등을 통해 KEDO 결정과 부시 대통령의 성명 내용을 진지하게 설명하고, 시간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 북한의 신속하고 현명한 판단을 촉구할 방침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정도의 실무접촉 레벨에서는 핵문제를 거론하는데 한계가 있 을 뿐아니라, 남은 3주동안 이렇다할 남북대화가 예정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핵문제를 둘러싼 한.미.일의 입장과 함께 부시 대통령의 진의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포함한 북측 최고지도부에 전달, `오판'을 하거나 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위급의 대북 특사를 파견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보고,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달 하순 제8차 장관급회담 남측 수석대표로 평양에 간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당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50분간 단독 면담한 자리에서 김 상임위원장을 적극 설득했다고 통일부 관계자는 전했다.

클린턴과 부시 행정부는 (대북 태도에서) 완연히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지금 이라크 문제로 미국이 신경쓰는 바람에 북한에 조금 시간이 남아 있을 뿐이며, 이 시간을 놓치면 북한이 정말 후회하게 된다는 취지로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정부는 북한이 생존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에 관해서도 나름대로 북한을 설득할 논리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세계 어느 나라와도 불가침 조약을 맺은 적이 없는 만큼, 부시 대통령이 2001년 6월과 지난 17일 두차례 불가침 의사를 천명한 것 자체가 국제적 약속인 만큼 북한이 무게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는 논리다.

특히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침략했거나, 침략하겠다'는 점을 사실상 전제로 하는만큼, 전세계를 경영하는 미국으로서 자신들이 그동안 `침략국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듯한 전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정도 북한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지난 2000년 9월 제주도 남북 국방장관회담 당시 조성태 장관은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미국의 단독 대북공격' 우려를 표명하자 "국교정상화 협정에는 상호불가침 조항이 들어가는만큼 북미 국교정상화를 통해 풀면 된다"며 "그러니 북한이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해결, 적군파 추방 등 걸림돌을 제거하라"고 촉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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