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회가 14일 12월분 중유공급 중단은 물론, 경수로 일정 재검토라는 강한 제재조치를 내림에 따라 북한의 반응 여하에 따라선 남북관계는 물론, 한반도가 또 다시 ‘핵 위기’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측이 KEDO측의 요구를 당장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들은 북측의 반응을 세 가지 정도로 예상했다.

우선 외무성이 직접 나서 ‘담화’ 등을 통해 KEDO의 이번 조치를 강력히 비난하고, 제네바 합의가 파기될 수 있다고 ‘말’로 경고하는 경우다. 그동안 북한이 이번 핵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고, 중유공급 중단 때까지 2~3주가 남아있다는 것을 감안,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려고 할 것이란 관측이다.

다음으로 북한이 영변의 5MW 원전(原電)에서 사용했던 폐연료봉의 봉인을 해체하겠다고 위협할 수 있다. 폐연료봉 봉인은 제네바 합의에 따른 것으로, 제3국으로 반출하기로 돼 있다.

현재 봉인된 폐연료봉은 북한 내에 보관중이나 봉인을 뜯고 재처리할 경우 4~5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어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북한이 사용할 수 있는 최강수는 제네바 합의 파기선언. 이는 핵사찰 대상인 플루토늄 핵무기 개발은 물론, 중단된 핵개발 활동을 전면 재개하겠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93년과 같은 핵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이 처음부터 강경 카드를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첫번째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는 북한 내부 사정이 93년보다 훨씬 나쁜데다 중유 공급이 중단될 경우 타격이 커 당장 강경카드를 쓰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작년 한해 북한은 원유 57만9000t, 유류 67만2000t을 도입했다. 유류 중 KEDO가 공급하는 중유 50만t이 포함돼 있어 북한 전체 유류사용의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다. 당장 중유 발전소인 선봉화전(20만㎾)의 가동이 중단되고, 산업시설 가동도 어려워진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조치로 인해 남북관계가 제동이 걸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은 남북한 모두 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분리 대응해 왔다. 양측은 15일 판문점 연락관 채널을 통해 남북 철도·도로 실무접촉 2차회의와 해운실무접촉 1차회의를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금강산에서 동시에 갖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 KEDO의 조치에 한국도 동참한 점을 들어 북측이 남북관계에도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주 갖기로 예정됐던 북한 경수로 인력의 남한 내 교육은 무산되기도 했다.

북측이 우리 예상과 달리 처음부터 강경카드를 빼들 경우에는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김인구 기자 gink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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