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헤이번(미 코네티컷주)=강효상기자

지난 88년 저서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에서 미국의 몰락을 예언한 예일 대학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55) 교수는 오늘의 미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조선일보는 지난 19일(미국 시각)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번의 예일 대학 캠퍼스에서 케네디 교수를 만나 21세기 미국과 세계에 대한 생각을 들어 봤다.

―코네티컷 주는 민주당 조지프 리버만 부통령 후보의 상원의원 출신 지역이고, 예일 대학은 리버만 후보 등 민주·공화 양당의 정·부통령 후보 4명중 3명을 배출한 학교인데….

“리버만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인물이다. 그는 뉴헤이번 출신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처럼 예일 대학을 나왔다. 나의 유태인 친구 대부분은 진보적이지만, 그는 정통 유태교다. 원래 예일 대학은 백인·신교도·남자 중심의 대학이지만, 지금은 학부생의 50%가 여자이고, 종교적으로도 33%가 유태인, 26%가 가톨릭이다. 리버만이 태어난 50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유태인인 리버만이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것은 미국내 민족적, 사회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리버만이 유태인이란 점이 민주당 선거 전략에 도움이 되리라고 보나?

“두가지 면에서 긍정적이고, 한가지 점에서 부정적이다. 유태인들은 미국에서 아주 영향력있는 그룹이다. 이들이 그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또 유태인들은 주로 민주당 성향이지만 월가의 보수적인 유태인도 많다. 그런데 리버만은 가족의 가치와 도덕을 강조하는 정통 유태교란 점에서 보수적 유태인의 지지도 받고 있다. 또 가톨릭과 일부 개신교도들도 그에게 호의적이다. 리버만과 흑인들과의 관계는 복잡하다. 리버만은 과거 흑인을 위한 입법에 반대했었다. 흑인들은 클린턴은 좋아하지만, 고어는 덜 좋아하고, 리버만은 고어보다 덜 좋아한다. 어쨌든 리버만 선택은 고어로선 매우 현명한 전략이었다. ”

―지난 88년 미국의 몰락을 예견했지만 지금 미국은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인데….

“12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미국은 막대한 예산 적자, 과다한 국방비 지출로 허덕였고, 사회, 특히 교육 부문에 문제가 많았다. 당시 일본은 신기술과 자동차, 컴퓨터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했나? 다행히 냉전이 끝났고, 기초가 취약한 일본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소련 군사력과 일본 기술·금융 파워가 사라진 것이다. ”

―영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저서의 내용이 영국적이라는 비판을 받지는 않았나?

“나는 미국에 온 지 17년이 됐지만, 영국 국적을 갖고 있다. 그런 비판에는 익숙하다. 아직도 미국을 유럽이나 아시아 시각으로 보긴 하지만, 외국인이라서 쇠퇴론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나는 100년 전 세계 최강이었다가 지금 10위 권으로 내려앉은 영국 역사를 잘 안다. 나 외에, 로버트 라이크나 데이비드 칼레오 같은 이들도 같은 주장을 했다. 이런 주장은 ‘미국이여, 일어서라!’는 경고 또는 경종이었다. 미국 기업 지도자들을 향해 미국 기업의 비효율성을 비판했고, 이후 기업들은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약 5년간 피나는 구조조정을 통해 세계 최고의 효율적인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

―귀하의 저서는 결과적으로 미국을 도와준 셈인가?

“그 책을 쓴 목적은 역사적으로 강대국이 어떻게 부상해서 쇠퇴하는 지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캐스퍼 와인버거 같은 보수주의자들로부터 비판도 받았다. 중요한 것은 대다수 미국인들의 반응이었다. 업계에선 엄청난 반향이 있었다. 미국의 생산력을 좀더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역설적이지만, 당시 아칸소 주지사였던 클린턴 대통령이 나를 초대했고, 앨 고어 부통령은 또 다른 저서인 ‘21세기 준비(Preparing for the 21st century)’도 읽었다. ”

―21세기에도 미국의 세계 최강 지위가 유지될 것으로 보나?

“조선일보 편집자들이 기간을 어떻게 잡는지 모르지만, 10년 후라면 핵전쟁이 일어나거나 환경 재앙이 없는 한 미국의 지위가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미국의 투자와 신기술은 당분간 미국을 가장 효율적인 국가로 유지시킬 것이다. 만일 중국과 인도가 인구 억제에 성공하고 생활 수준과 군사 기술을 향상시키면, 30년 쯤 후 미국처럼 큰 나라로 클 수 있다. 미국이 21세기에도 최강으로 남느냐 여부는 미국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과 중국, 인도 등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발전하느냐가 중요하다. ”

―미국이 너무 오만하다는 지적은.

“오만하다기보다 무관심과 무지가 존재한다. 환경, UN, 국제 형사재판소 등에서 미국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미국의 무관심은 외국의 비협조를 낳아, 국제적으로 위험하다. ”

―러시아의 재기 가능성은?

“러시아는 미국 같은 강대국이 되기 어렵지만, 푸틴 이후 보다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

―중국의 도전 가능성은?

“중국에서 평화적인 전환이 가능한가, 경제 번영은 가능한가. 주변국에 대한 근시안적 행동은 없을까 등등이 세계적인 의문점이다. 중국의 정치·사회 불안은 전세계에 나쁜 뉴스다. 서방에는 ‘적당한 중국(Moderate China)’이 가장 바람직하다. 한국에는 북한보다 중국이 더 걱정거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

―21세기에는 어떤 위기들이 도사리고 있나.

“21세기를 낙관하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반대이다. 21세기의 위기는 크게 ‘전통적인 위기’와 ‘새로운 위기’로 나눌 수 있다. 전통적인 위기는 국가간 위기를 의미한다. 중국이 대만에 군사적인 행동을 하거나 중동 평화협상 결렬로 중동에 위기가 오고, 러시아가 폴란드나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것 등이다. 국가간 군사 대결은 가능하지만,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Possible but not likely). 그러나 일어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일어날 것 같다. 새로운 위기는 비군사적 위기다. 일본 증시 폭락이 프랑크푸르트와 월가로 이어져 새로운 금융위기가 닥치는 것이다. 가능성이 있다. 환경 위기는 서서히 찾아온다. 새로운 질병에 의한 건강 위기(Health Crisis)도 올 수 있다. 환경 파괴로 열대 우림 지역의 바이러스가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또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를 침공하면 유가가 폭등, 세계 경제가 침체기를 맞을 수도 있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선언했을 때 ‘틀렸다’고 생각했다. 21세기에도 위기 요인은 상존한다. ”

―한국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한국 외교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한국은 북한때문에 군사 조치에 한계가 있고, 지정학적으로 러시아, 중국, 일본에 낀 중간 크기의 국가다. 우선은 국내 역량을 높여야 한다. 정치 수준과 외부 변화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외국 문화와의 균형도 필요하다. 경제 성공이 국가의 성공을 결정하진 않는다. 개방(Openness)과 토론(Debate), 개방 교육 시스템, 환경 인식, 상대에 대한 관용(Tolerance)도 필요하다. 국가 내부 모순을 줄여 전체적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 ”

/hskang@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