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成旭

최근 북한이 남북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북한의 곡물 생산량 부족이다. 북한은 풍·흉년에 관계없이 연간 100만t 이상에 달하는 곡물 부족을 보충해야 하는 구조적인 농업문제를 안고 있다. 북한 당국자들은 모자라는 곡물을 보충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성과는 그리 시원치 않다.

외화부족으로 모자라는 식량을 외국에서 수입하기도 여의치 않고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도 예전 같지 않다. 금년도 북한의 식량 사정은 100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대규모 기아로 전환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가을철 수확기를 앞두고 있는 요즘은 지난 5월 이후 계속되어 온 식량부족 사태가 절정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족한 식량을 지원할 수 있는 나라는 남측뿐이다.

정부 당국은 쌀 재고 중에서 300만섬(43만t) 이상을 대북 지원에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북측은 쌀이 모자라 아사자가 발생하고, 남측은 쌀이 남아돌아 가격이 폭락하는 상황은 한반도 역사상 보기 드문 경우다. 단지 인도적 차원에서만 따진다면 남북간에 쌀이 이동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북측의 7차 장관급 회담대표는 굳은 표정의 남측대표와는 달리 회담 종료 후 “많은 선물을 놓고 간다”고 회담 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북측으로서는 식량지원을 공론화할 수 있는 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이달 중에 개최키로 함으로써 다음달부터는 30만t 이상의 쌀이 북측으로 수송될 수 있는 일정을 확정한 이상 회담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고 판단한 듯 싶다.

시급한 문제를 한번의 대화를 통해 해결한 데 대해 북측의 협상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열세에 있는 남측 회담 당국자들에게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북측이 쌀지원이라는 대남 주요 외교목표를 달성한 이상 남측도 각종 회담에서 북측에 대해 적극적인 요구를 해야 할 것이다. 북한 외교정책의 주요 목표 중의 하나는 국제사회로부터의 식량조달이다. 쌀이라고 하는 중요한 남측의 카드를 북측에 보여준 이상 각종 반대급부를 받아내야 한다. 쌀은 북한 군부의 양보를 얻어 낼 수 있는 카드다. 쌀지원이라는 중요한 카드를 소홀히 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 비록 남아도는 쌀을 지원하는 것이지만 정부는 국민들에게 대북 쌀지원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간 다수의 국민들은 어떤 회담에서 북측이 어떤 요구를 하여 쌀지원이 이뤄지고 있는가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남북협상 과정에서 구체적인 진행과정의 이야기를 전부 공개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고상한 설명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그동안 대북지원을 하면서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을 게을리함으로써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셋째, 쌀지원을 북한의 농업구조개혁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북한은 농업구조적으로 식량을 자급자족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북한의 농업문제는 결국 통일 후 한반도 전체농정과 연관돼 있다. 북한의 곡물생산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우리 농정의 경험상 최소 20년 이상이 소요된다. 따라서 매년 연례화될 가능성이 큰 쌀지원을 북한의 농업구조개혁과 연계시키는 노력을 경주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쌀을 받아낸 뒤 북측의 협상자세를 예측해야 한다. 다음달 쌀이 수송된 이후에도 교착상태에 빠진 각종 당국자 간 회담을 정례화하고 평화정착을 위한 교류협력을 활발하게 진행시킬 경우 국민들의 우려는 다소나마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미래를 낙관하기에는 과거 북한의 행태가 너무도 가변적이었다. 북측의 군부를 비롯한 강경파들은 쌀을 확보한 이상 남측과의 과도한 대화는 불필요한 일이라며 남측의 요구를 일축할 것이다. 군부의 동의가 필요한 경의선 연결 등을 비롯한 각종 합의사항은 또다시 없었던 일이 되며 남북관계는 ‘우발적 충돌’을 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황으로 반전될 것이다. 쌀을 지원한 뒤 국민들이 혹시 겪게 될 허탈감을 정부는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고려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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