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용순(김용순) 노동당 비서의 3박4일 방한은 남·북한의 현안을 정리하는 계기가 됐다. 남·북한 간에는 그동안 원칙 합의에도 불구하고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김 비서의 방한으로 이들의 윤곽이 어느 정도는 드러난 셈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답방). ‘가까운 시기’로 표현돼 있다. 정부 당국자는 “양측간 내년 봄 답방으로 의견접근을 본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내년 봄’으로 의견 접근을 해 놓고 ‘가까운 시기’라고 명문화했을지는 의문이고, 그런 점에서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시사로 받아들여진다. 9월초까지만 해도 청와대에서 ‘연내 답방’ 이야기가 흘러나온 점을 감안하면 이번 합의로 연내 답방이 물건너갔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김 위원장의 답방 전에 김영남(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먼저 서울을 방문하기로 돼 있는 만큼 김 상임위원장의 방문 시기가 정해지면 김 위원장의 답방 시기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이산가족 생사확인이다. 8월말 평양 장관급회담에서 ‘서신 교환’에 합의한 바 있고, 생사 확인 없이는 서신교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사 확인’ 자체는 크게 새로울 게 없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해법을 구체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즉 9월에 생사확인을 시작하고 확인된 사람부터 서신을 교환키로 한 만큼 의지만 있다면 10월부터도 가능하다. 문제는 북한 당국이 얼마나 빨리 이산가족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느냐다. 8·15 교환방문 때는 200명 중 138명의 생사를 확인하는 데 10일 남짓 걸렸다. 이런 식이라면 통계청 조사로 40여만명에 이르는 이산 1세대의 생사를 확인하는 데 100년 가까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20일 적십자회담에서는 면회소 설치 장소를 놓고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측은 서울과 평양에서 가까운 판문점을, 북한측은 비용이 많이 드는 금강산을 집중 검토 중이어서 결론이 유보된 상태다.

우리측이 이산가족의 범주에서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가 어떻게 매듭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번에도 “이해한다”는 수준의 원론적 답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장관 회담 시기를 이끌어낸 것은 상당한 성과다. 비록 공동보도문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25일이나 26일쯤 홍콩에서 이뤄질 것 같다. 국방장관 회담은 실제 무엇을 논의하느냐는 내용의 문제보다 상징성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대결의 당사자가 자리를 함께한다는 것은 바로 어떤 것보다도 긴장완화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병묵기자 bm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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