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외교관 1호’인 고영환 통일부 장관 특보가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탈북 외교관 1호’인 고영환 통일부 장관 특보가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정초부터 북한이 심상찮다. 지난달 5일부터 2박 3일간 서해 NLL(북방한계선) 부근에 약 400발의 포격을 퍼부은 것을 시작으로 극초음속 미사일, 순항 미사일, 지대공 미사일, 대함 미사일을 동원해 15일 현재까지 총 11차례, 주 2회꼴로 무력시위를 했다. 동원한 무기가 전부 대남 공격용이었다. 김정은이 작년 말 “북남 관계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며 “유사시 핵무력을 동원한 남조선 전 영토 평정”을 지시한 뒤 벌어지는 일이다. 미국 조야에선 한반도 전쟁 임박설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지린성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 수천명이 지난달 북한 당국의 임금 체불에 항의하며 파업과 폭동을 일으켰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국방성 산하 무역회사가 코로나 기간 밀린 임금을 귀국할 때 한꺼번에 주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그동안 평양에 전액 상납했으며, 최근 이 사실을 알게 된 노동자들이 격분해 공장을 점거하고 북한 간부를 인질로 삼는 등 난동을 일으켰다는 내용이다. 대남 협박을 퍼붓는 북한의 취약한 내부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로 확인된 이 기사는 북한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 통일부장관 특보가 제보한 것이었다.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 사무실에서 고 특보를 만났다.

―폭동은 잠잠해졌나.

“겨우 진정시켰는데 불씨는 남아 있다. 월급이 1000만달러 정도 밀렸는데 한꺼번에 줄 수 없는 상황이다. 조금씩 주면서 달래고 있다. 대외경제성, 인민보안성, 국가보위성 주재관들, 심지어 대사관 직원들한테도 갹출 지시가 내려왔다. 과거에도 임금 체불은 종종 있었는데 이번엔 2500~3000명이 집단행동을 했다. 정말 ‘특대형 사변’이었다. 이 사람들을 다 (북으로) 잡아들이고 싶지만 그러질 못하고 있다. 교대 인원도 다 뽑았는데 중국이 비자를 안 내주고 있다.”

―중국이 왜 그러나.

“북한 소식통한테 들은 얘기다. ‘중국×들이 우리를 길들이려 한다’더라. 작년 9월 김정은이 푸틴을 만나 ‘우리나라의 최우선 순위는 로씨야와의 관계’라고 말한 뒤 중국 기류가 달라졌다. 빈정상한 것이다. 원래 북 식당 종업원에겐 공연 비자, 노동자에겐 학생 비자를 내주는 방식으로 제재 우회를 도왔는데 최근 쿼터를 확 줄여버렸다. 교대 인원이 들어가질 못하니 중국에 나와 있는 사람들도 못 바꾸는 상황이다.”

―일단 잡아들이면 안 되나.

“예전 같으면 그랬을 거다. 이 정도면 거의 정치범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돈이 너무 귀하다. 이 사람들이 10~20년간 재봉질만 한 장인들이다. 일반 노동자들은 800~1000달러를 받지만 이 사람들은 임금이 2000달러다. 중국 업체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2500명이 매달 2000달러면 1년에 6000만달러다. 북한 형편에 엄청난 돈이다.”

고영환 통일부장관 특보가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 장련성 기자
고영환 통일부장관 특보가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 장련성 기자

―어떻게 ‘반동분자들’을 내버려 두나.

“이따금 북한 장마당 소요 사태를 몰래 찍은 영상을 입수한다. 그걸 보면 매대 없이 장사하는 메뚜기 장사꾼들이 단속원들한테 대든다. ‘너희가 우리 먹여줄 거냐’ ‘나 장사 못하면 우리 식구 굶는다’며 삿대질을 하는데 안전원(경찰)들이 쩔쩔매다 자리를 피한다.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지린성 폭동 때도 노동자들이 ‘돈 줄 때까지 일 안한다’며 집기를 부수고 간부들을 창고에 가둬놓고 때리는데도 (북한 당국이) 어쩔 줄 몰라 허둥댔다.”

―예전의 북한이 아니란 말인가.

“요즘 북한에선 폭력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제일 많이 얻어맞는 게 보위원과 안전원이다. 귀가하거나 집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골목에서 폭행하고 도망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찍소리도 못하던 옛날과 다르다.”

―그래서 주민 통제가 되겠나.

“낮과 밤이 다르다. 요즘은 보위원이 길 가던 사람 아무나 붙잡고 손전화를 뺏는다. 남조선 노래가 나오면 끌고 간다. 또 청춘남녀가 ‘오빠야’ ‘자기야’ 하면 신분증 보자고 한다. 성씨가 다르면 ‘오빠 아니잖아. 너희 괴뢰 록화물 봤지’ 하면서 잡아간다. 숨도 못 쉴 정도로 통제하니 지금까지 별생각 없이 쓰던 말도 혹시 남조선 말투 아닌지 불안해들 한다. 심지어 ‘처음 뵙겠습니다’도 남조선 말이라고 못 쓴다더라. 살기도 힘든데 이렇게 찍어누르니 야음을 틈타 분풀이를 하는 것이다.”

북한은 2020년 극단적 처벌 조항을 넣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시작으로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 이른바 ‘혐한 3법’을 연달아 제정했다. 모두 문재인 정부 시절 벌어진 일이다. 김정은이 금강산 시설물 철거를 지시(2019년 10월)하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2020년 6월)한 것으로 모자라 극단적 법제화까지 한 것은 남북교류를 통해 얻는 것보다 한류 침투에 따른 사상·체제 이완 같은 부작용이 훨씬 크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고 특보는 분석했다.

―북한 경제 사정은 어떤가.

“김정은이 얼마 전 ‘지방 인민들에게 생필품 제공도 못 한다’고 한탄했는데 쉽게 말해 요즘 지방에선 간장 된장이 없어 소금을 찍어 먹는 형편이다. 과거엔 밤에 석유나 송진으로 등잔도 켜고 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어렵다. 저녁 7시만 돼도 다니는 사람이 하나 없고 초저녁부터 취침이다. 좀비 도시, 유령도시가 따로 없다. 유일하게 불 들어오는 데가 김일성·김정일 동상이다.”

―어려워진 게 최근 일은 아닐 텐데.

“내가 북에 있을 때도 평양과 지방은 격차가 컸다. 지방에서 배급은 고난의 행군 때 끊겼고 2010년대 중반 안보리 제재 강화로 더 어려워졌다. 그래도 부족한 물품은 장마당에서 구해다 썼는데 (코로나를 거치며) 장마당 운영 시간이 단축되고 거래 품목에도 제약이 생겼다.”

―평양은 좀 나은가.

“평양도 출퇴근 시간에 2시간씩 하루 4시간 전기가 들어온다. 초고층 아파트가 많은데 퇴근 시간에 엘리베이터 타려고 아파트마다 300~400명씩 줄을 선다. 김정은이 자랑하는 화성지구 아파트는 70~80층이다. 주민들 골치가 얼마나 아프겠나. 난방이 안 되니 주민들이 땔감을 구하러 다닌다. 이걸 못 구해 외곽으로 밀려나는 주민이 상당히 많다.”

―매년 아파트를 1만채씩 짓는데.

“평양 하수도를 중국 인민지원군이 철수하기 전인 1958~59년에 만들었다. 그 위에다 무작정 초고층 아파트를 올리고 있다. 변기 물을 내리면 1층에서 다 막히고 역류하고 난리다. 평양 출신 탈북자가 ‘똥구멍 없는 아파트’라고 하더라. 하수관 정비, 하수처리 시설 확충 없이 속도전으로 아파트만 짓고 있다.”

―인분 처리가 걱정이겠다.

“다행히 겨울철엔 인분을 모아야 한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퇴비 전투가 벌어진다. 평양도 예외가 아니다. 고위층은 인민반장에게 돈을 주고 해결하지만 대다수 주민은 모아둔 인분을 연탄재와 섞어 퇴비를 만든다. 할당량이 세대당 500㎏이다. 한창 인분을 모으고 있을 때다.”

평양의 열악한 사정은 김정은도 몇 차례 시인했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 6월 주재한 정치국 회의에서 ‘평양시민 생활 보장을 위한 당면 문제’를 논의하고 이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작년 12월 전국어머니대회 연설에선 “수도 시민들의 생활용수와 땔감 문제, 대중교통 운수와 승강기, 난방 보장 문제를 먼저 해결하겠다”고 했다. 3년 6개월 동안 아무것도 개선하지 못했단 얘기다.

북한의 협박과 무력시위, 2013년의 데자뷔?

고영환 통일부장관 특보는 북한의 최근 위협과 대남 무력시위가 2013년 상황과 닮았다고 했다. 고 특보는 “2013년 초에도 북한은 연일 ‘핵 불바다’를 위협하고 김정은이 서해 최전방 장재도와 무도에 가 ‘적진을 벌초해버리라’고 하는 등 전쟁 위기감이 극에 달했다”며 “장성택의 영향력이 컸을 때다. 자기 권력이 취약하니까 밖으로 블러핑을 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내부 문제 때문에 대남 위협의 수위를 높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전쟁을 하겠단 나라가 컨테이너 5000개 분량의 포탄을 팔아넘기겠나. 오히려 그만큼을 들여와야 정상”이라며 “김정은의 최대 관심사는 4대 세습이고 김씨 왕조가 이어지는 것이다. 전쟁을 결심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고영환은 누구?

엘리트 외교관 출신 탈북민이다. 1953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외국어혁명학원, 평양외국어대학을 거쳐 1979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김일성의 프랑스어 통역을 3년8개월 담당했다. 콩고 주재 북한대사관에 근무하다 1991년 귀순했다. 탈북 외교관 1호다. 국정원의 싱크탱크 격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26년 근무했다. 작년 9월 신설된 통일부장관 특별보좌역에 기용됐다. 엘리트 탈북민들이 한국 정착 후 가장 먼저 찾는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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