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박진(앞줄 왼쪽 둘째) 당시 외교부 장관이 과테말라에서 열린 제9차 카리브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 전 장관은 당시 호세피나 비달(점선) 쿠바 외무차관을 만나 수교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외교부
지난해 5월 박진(앞줄 왼쪽 둘째) 당시 외교부 장관이 과테말라에서 열린 제9차 카리브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 전 장관은 당시 호세피나 비달(점선) 쿠바 외무차관을 만나 수교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외교부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쿠바와의 소통 채널을 유지하며 올 초까지 수교 협상을 이끌었다. 그는 15일 본지 인터뷰에서 “쿠바는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해 조심하면서도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상당한 의지를 보였다”며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도 말자’ 기조로 대화하다 신뢰가 쌓이면서 수교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고 했다. 박 전 장관은 “쿠바 측과 비공식 만남 때 쿠바 뮤지션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음악을 깔아놓는 등 신경을 썼고, 쿠바 측은 K·팝 K드라마 얘기로 화답하면서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쿠바와의 수교는 어떤 의미가 있나.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중남미 외교 지평을 확장했다는 의미가 있다. 또 북한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쿠바와 외교 관계 수립은 한반도 평화 측면에서도 우리 외교의 큰 이정표가 될 것이다. 여러모로 상징성이 있는 나라라서 정부 출범 초기부터 윤석열 대통령도 각별히 관심을 기울였다.”

―수교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작년에 세 번의 모멘텀이 있었다. 첫 번째로 5월달에 과테말라에서 열린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에 정부 대표로 참석해 쿠바 외교차관과 만났다. 미국통 여성 외교관인데, 얘기가 잘 통해 20분 정도 예정한 대화가 1시간 넘게 이어졌다. 한-쿠바는 경제·통상·무역은 말할 것도 없고 관광·인적 교류 등 서로 협력해야 할 분야가 많아 ‘윈윈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오갔다. 쿠바 차관은 특히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분야는 한국이 바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세 번째 모멘텀은?

“9월 유엔총회에서 쿠바 외교장관과 만날 기회가 있어 대화를 했다. 이 두 번은 언론 보도로 알려져 있지만, 그사이 여름에 비공개 회동이 또 있었다. 쿠바 측에서 전직 외교 담당 고위 인사가 방한했는데,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서로 편하게 ‘정무적인 문제’를 포함해 솔직한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신뢰가 많이 쌓였고, 수교에 이르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픽=양진경
그래픽=양진경

―'정무적 문제’는 북한과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

“그래서 최대한 로키로 대화를 한 것이다. 쿠바는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해 조심하면서도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는 적극적,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스페인어로 ‘sin prisa, sin pausa’라고 하더라.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 말자’는 뜻이다. 그 이후로도 여러 소통이 계속됐다.”

―처음에 물꼬는 어떻게 텄나.

“우방국들의 도움, 측면 지원이 있었다. 외교 사안이라 어떤 나라가 어떤 도움을 줬는지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다. 다만 처음에 과테말라에서 쿠바 측과 만날 때 멕시코를 먼저 들렸다 갔다는 걸 봐달라. 미국, 유엔 사무총장과도 공감대를 만들면서 진행시켰다. 또 쿠바가 가톨릭 국가여서 바티칸(교황청)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좋은 분위기와 환경이 형성됐다.”

―영사 관계나 통상대표부 등을 거치지 않고 수교로 바로 갔다.

“쿠바 외교차관과 만날 때 이왕이면 바로 정식 외교 관계를 맺자고 직접적으로 던졌다. 쿠바도 나름대로 고려 사항이 있었겠지만, 한국으로부터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있으니 오케이하지 않았겠나. 쿠바를 직접 가본 적이 있는데 경제가 매우 어렵다. 미래 성장 먹거리 찾는 데 고민도 많더라.”

―쿠바 내 한류 열풍도 상당히 도움이 된 걸로 알려져 있다.

“실제 그랬다. 쿠바에 한국어 배우기 붐이 일고 있고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도 매우 높다. K팝, K드라마 얘기로 대화를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나도 국내서 열린 쿠바 영화제 가서 직접 영화를 보고 배우들을 만나기도 했다. 비공식 대화 때는 쿠바 뮤지션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음악을 배경으로 틀어놨다. 이 밴드에 콤파이 세군도라고 한국으로 치면 나훈아·남진 같은 국민 가수가 있는데, 이분에 대한 공부도 해서 화제로 꺼내니 너무 좋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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