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령을 받아 국내에 지하 조직을 만들어 활동한 혐의로 기소된 ‘충북동지회’ 사건 피고인 3명이 16일 1심 재판에서 각각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문재인 정부 말기부터 북한 노동당 대남 공작 기구인 문화교류국에 포섭된 국내 지하 조직들이 기소됐는데 이 가운데 첫 판결에서 중형이 선고된 것이다. 충북동지회 사건은 피고인들이 ‘재판 지체’ 전술을 쓰면서 기소 이후 1심 선고까지 883일이 걸렸다. 또 ‘자주통일 민중전위(창원)’ ‘ㅎㄱㅎ(제주)’ ‘민주노총 간첩단(수원)’ 등 사건에서는 아직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청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김승주)는 이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충북동지회 고문 박모(60)씨, 위원장 손모(50)씨, 부위원장 윤모(53)씨에게 각각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2년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재판 중 보석으로 풀려났던 박씨와 윤씨,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은 손씨를 모두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행은 대한민국의 안정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존립을 침해할 수 있다”면서 “이들은 장기간 은밀하고 치밀하게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그래픽=박상훈
그래픽=박상훈

박씨 등은 지난 2017년부터 북한 공작원을 해외에서 접선한 뒤 공작금 2만달러와 지령을 수령한 혐의를 받았다. 이후 충북동지회를 결성하고 지역 인사 60여 명 포섭을 시도한 혐의, 국내 각종 정보를 수집해 북한에 보고한 혐의 등도 받았다.

재판부는 유무죄 판단에 앞서 “북한은 반국가 단체가 명백하다”면서도 “국보법은 부당한 확대 해석이 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박씨가 2017년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공작원과 만나는 등 피고인들이 수차례 북한 측과 접선한 혐의를 사실로 인정했다. 국보법상 회합·통신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것이다. 또 피고인들이 북한 공작금 2만달러를 받은 혐의도 인정된다고 했다. 다만 북한 공작원 접선을 위해 출입국한 행위는 국보법상 탈출·잠입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로 봤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충북동지회 결성에 형법상 범죄 단체 조직 혐의를 적용해 유죄로 판단했다. “박씨 등은 북한 지령에 따라 조직을 만들었고 이를 북한에 보고했다. 북한은 이들에게 수시로 지령을 내렸고, 이들은 북한을 본사라고 부르며 규율 위반자에 대해 북한에 징계를 요청하는 등 지휘 또는 명령과 복종·통솔 체계가 갖춰져 있다”고 본 것이다. 국보법 사건에서 범죄 단체 조직죄가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또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각종 정보를 수집해 북한에 보고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수집한 정보가 국가 안보를 해칠 만한 정도의 기밀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국보법상 간첩 혐의는 무죄로 봤다. 충북동지회를 이적(利敵) 단체로 볼 수도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다만 공범 중 한 명이 공개된 장소에서 노트북을 사용하는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 중에 북한 지령문, 대북 통신문 등이 찍힌 부분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수사 기관이 해외에서 어떤 사람의 활동을 촬영하기 위해 영장을 받지 않아도 되지만 노트북 속 내용까지 공개될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다”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 기관이 사후 영장이라도 받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수사 기관이 압수 수색을 통해 피고인 노트북에서 발견한 통신문 등에 대해서는 적법한 증거로 인정했다.

이 사건은 국보법 위반 사범들이 ‘재판 지체’ 전술을 사용한 대표적 사례다. 피고인들은 법관 기피 신청을 5차례 냈다. 기피 신청은 다른 재판부에서 심리하고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본(本)재판이 중단된다. 이에 따라 11개월간 재판이 멈췄다. 피고인들은 1심 선고를 이틀 앞둔 지난 14일 ‘제3국 망명 지원’ 등을 유엔에 요청하기도 했다. 또 이날 1심 선고 직전에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이미 2000년에 사건을 만들어 놓고 20년 넘게 불법 사찰, 조작을 시도했으며 2021년 조작을 완료했다”고 했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총 4명이다. 이날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3명을 제외한 연락책 박모(53)씨는 따로 재판받고 있다. 박씨가 작년 10월 뒤늦게 별도의 법관 기피 신청을 냈는데, 이에 대한 판단이 늦어지면서 박씨 재판만 분리된 것이다. 박씨에 대한 1심 선고는 이르면 내달 초 나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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