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팔레스타인 테러집단인 하마스의 정치국 2인자인 살레흐 알 아루리가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 무인기의 공격으로 살해된 것과 관련해, 하마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알라의 당(黨)’이라는 뜻인 헤즈볼라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여러나라에서 ‘테러집단’으로 규정됐다. 그러나 레바논에선 남부 지역을 기반으로 의회 내 13석(전체 128석)을 차지한 정치세력이기도 하다.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 침공 초기부터 레바논 남부의 헤즈볼라와도 제2 전선을 구축해 이스라엘 북부의 민간인 7만 명을 후방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헤즈볼라의 간헐적인 미사일 공격에 맞서 원점을 파괴하는 정도의 대응이었다. 이스라엘의 알 아루리 제거를 계기로, 과연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본격적으로 이스라엘과의 전선을 확대할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헤즈볼라가 레바논 남부에 구축한 광범위한 땅굴이 다시 이스라엘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지난달 17일 가자 지구의 최신 땅굴 이미지를 공개한 바 있다.

테러집단 하마스가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 간 국경 검문소 400m까지 구축한 땅굴. 지난달 17일 이스라엘군은 총 4km에 달하는 이 땅굴을 공개했다. /이스라엘 국방부
테러집단 하마스가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 간 국경 검문소 400m까지 구축한 땅굴. 지난달 17일 이스라엘군은 총 4km에 달하는 이 땅굴을 공개했다. /이스라엘 국방부

가자 시티 북쪽의 자발리야에서 이스라엘과의 국경 검문소인 에레즈 인근까지 4㎞에 달하는 땅굴로, 자동차도 다닐 수 있어 지금까지 가자에서 발견된 최대 규모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땅굴은 가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북부와 레바논 남부 국경 지역에도 총 길이가 수백 ㎞에 달하는 땅굴이 존재하는 것으로, 이스라엘군은 파악하고 있다.

이스라엘 북부의 안보 환경을 집중 연구하는 이스라엘의 알마(Alma)연구교육센터는 하마스의 최대 땅굴이 노출된 다음날인 지난달 18일 “하마스의 전략적 땅굴이 노출된 이래, 이란 대리인(代理人)들의 먹이사슬이 분명해졌다. 원조는 헤즈볼라, 나머지는 그 뒤를 따른다. 이스라엘군 작전으로 하마스 땅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는데, 헤즈볼라의 실력은 이보다 훨씬 정교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에서 수십 년 근무했던 알마 센터의 탈 비에리 대표는 2일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레바논의 땅굴 프로젝트는 가자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했으며, 깊고 여러 방향으로 가지치기를 했다”고 말했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초기에 판 땅굴과, 노출된 북한의 과거 땅굴을 비교하는 사진. /알마 안보 연구교육센터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초기에 판 땅굴과, 노출된 북한의 과거 땅굴을 비교하는 사진. /알마 안보 연구교육센터

이 레바논 땅굴 프로젝트의 배후엔 바로 북한이 있었다. 그에 따르면, 레바논 땅굴은 1980년, 1990년대에 산악 지형의 굴착 경험이 많은 북한의 도움으로 시작했다. 이후 2006년 이스라엘ㆍ헤즈볼라 간 전쟁[제2차 레바논 전쟁]이 끝난 뒤 헤즈볼라와 북한의 땅굴 건설과 무기 거래 유대는 강화됐고, 이란으로부터는 재정 지원을 받았다.

그 결과, 2014년 무렵에는 헤즈볼라는 땅굴을 독자적으로 파서 유지할 수 있는 기술과 지식을 보유하게 됐다는 것이다.

알마 센터가 2021년 7월에 발표한 ‘헤즈볼라: 땅굴의 땅’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 예로 레바논의 지중해 도시 시돈[사이다] 인근에서 남부 베카 밸리(Bekka Valley)의 도시들까지엔 45㎞의 ‘공격용 땅굴(attack tunnel)’이 연결돼 있다.

총 길이 45km에 달하는, 레바논 남부 공격 땅굴의 위치 추정도. 북한의 기술 전수와 이란의 재정 지원으로 구축됐다./알마 센터
총 길이 45km에 달하는, 레바논 남부 공격 땅굴의 위치 추정도. 북한의 기술 전수와 이란의 재정 지원으로 구축됐다./알마 센터

북한의 조선광업개발무역공사(KOMID)가 1300만 달러의 계약을 맺고 공사한 것으로, 실제 공사는 북한의 기술 지도 하에 민간 건설사로 위장한 헤즈볼라 산하 기업들이 했다. 감독은 헤즈볼라에 재정ㆍ무기 지원을 하는 이란의 혁명수비대가 맡았다. KOMID는 탄도미사일과 재래식 무기의 주요 수출업체로, 유엔의 경제 제재 명단에 포함돼 있다.

45㎞ 길이의 이 터널은 미사일을 장착한 트럭의 이동이 가능해, 헤즈볼라의 파테(Fateh) 110 지대지(地對地) 미사일을 장착한 트럭이 터널을 빠져 나와 미사일을 발사한 뒤 다시 터널 속으로 들어가 다른 곳으로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알마 센터는 2021년 보고서에서 공격을 위해 헤즈볼라 병력이 집결하는 여러 곳의 센터를 땅굴로 잇는 지도를 공개했다. 공격 센터들은 중형 트럭으로 병력 이송이 가능한 땅굴로 연결돼 있다.

이스라엘군은 2018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한 달 여에 걸쳐,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구축된 헤즈볼라 땅굴을 파괴하는 ‘북방 방패(Northern Shield)’ 작전을 전개했다. 이 군사작전에선 모터사이클을 이용해 지상으로 이어진 여러 수직 통로들을 옮겨 다니며 이스라엘군을 공격할 수 있는 헤즈볼라의 전술 땅굴이 다량으로 발견돼 파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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