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의 30일 협의 결과, 북한측이 설정하고 있는 남북협력 ‘우선순위’의 윤곽이 드러났다.

북한측은 이날 군사당국자 회담, 군사직통전화 설치 등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제안한 남한의 기조연설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박재규(박재규) 수석대표와 북한 전금진(전금진) 단장간 단독접촉에서도 이 부분은 합의를 보지 못했다.

북한측은 대신 경제협력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수석대표는 투자보장협정, 이중과세 방지협정 등 경협의 제도화를 북한측에 촉구했다.

이 부분은 북한측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동안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우리측을 의아하게 했던 대목.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북한 전 단장이 경의선 철도 연결 합의, 현대와 북한 아태평화위원회간 개성 공업지구 합의, 이산가족 교환방문 등을 ‘6·15 공동선언의 자랑스러운 결실’이라고 평가하며 공동선언의 성실한 이행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북측은 오후 회의에서 경협 제도화를 위한 실무협상 개최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남북한은 또 올해안에 이산가족 교환 방문을 2차례 더 하는 문제에도 의견을 접근시킴으로써 북한측이 이산가족 문제 또한 등한시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줬다.

이같은 입장에 비추어 북한은 일단 비군사적 남북협력을 우선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우리 정부 당국의 분석이다.

당장 남북간에는 9월 2일 비전향장기수 북송, 9월 5일 적십자회담 개최, 9월 15일 전후 경의선 연결 기공식 등이 예정돼 있다. 적십자회담에서는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문제를 협의하게 될 것이다. 즉, 북한은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시범적 경제협력(경의선 연결 등)과 사회·문화 교류 활성화→경제협력 제도화의 틀 마련→군사적 신뢰구축 조치 등으로 남북관계를 이끌어가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정부의 한 당국자는 “아직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북한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달 초 남한 언론사 사장단 방북 때도 휴전선 직항로를 말하며 군부의 반대를 거론했듯이 긴장완화 문제는 아직 군부의 공감을 얻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북한이 남한의 비전향장기수 북송이라는 공동선언 합의 사항의 이행을 지켜본 뒤 좀더 진전된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는 예측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회의는 북한측의 의도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하는 부분도 있다. 우선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를 의미하는 면회소 설치다. 교환방문과 면회소를 병행할 것인지, 교환방문 사업을 끝낸 후 면회소를 설치하겠다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면회소를 설치할 경우 굳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교환방문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측이 이산가족 교환방문, 교차 관광 등과 같은 ‘이벤트’성에 치중하면서 교류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문제를 뒤로 미루려는 자세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병묵기자 bm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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