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의 첫 해가 밝았다. 격동의 지난 한 세기를 보내면서 한반도의 우리들은 끊임없이 닥쳐오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풀어나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이 새 세기에야말로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할 한반도 최대의 문제는 바로 분단의 비극이다. 한반도 분단의 비극은 3중적 요인에 기원하고 있다.

우선 미-소를 중심으로 하는 냉전체제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불행하게도 한반도가 동아시아 냉전의 중심지화 한 것과 함께 남북한 정치주도 세력들은 급격히 냉전지향의 정책을 추진했고, 남북한간 대결정책의 악순환이 냉전 분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

한반도 분단이 장기화됨에 따라 국제적으로는 주변 강국들을 활용하기보다는 활용당할 가능성이 높아져서 한반도의 자율성이 약화되었고, 남북한간에는 끊임없는 군비경쟁의 심화를 겪었으며, 국내적으로는 남북 모두 경직된 권위주의의 형성과 강화라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분단의 엄청난 고비용을 줄일 수 있는 남북의 7·4공동성명이나 기본합의서 체결과 같은 노력은 결국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지 못한 채 좌절하였다. 그러나 우울한 남북한 관계사의 전개 속에서도 소련의 해체와 함께 냉전질서가 막을 내렸고, 미-소 중심의 동아시아 냉전질서는 미-일 대(대) 중국의 갈등과 협조라는 새로운 틀로 재구성되어 가고 있다. 한반도의 국내 체제사에서도 한국은 권위주의 체제를 벗어나 민주화의 새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세기사적 변화에 직면하여, 남북은 나름의 역사인식 위에 상이한 대응을 모색하고 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분단 해결의 짐을 21세기로 넘겼다.

우리 정부는 분단 해결을 위한 21세기적 대안으로 냉전구조의 해체를 강조하고, 구체적 과제로서 남북한의 화해협력, 북한의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개선, 대량살상무기의 제거와 군비통제, 북한의 개방과 국제사회 참여,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들고 있다. 북한이 미래를 과거의 시각에서 읽고 대비함으로써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고 있다면, 우리 정부는 미래 속의 과거와 현재의 무거움을 충분히 느끼지 못함으로써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세기사적 변화와 지속을 과거와 미래의 역사적 균형감 속에서 조심스럽게 바라다 볼 수 있다면, 한반도 통일의 실마리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국제 차원의 냉전구조 해체와 더불어 남북의 국내차원의 민주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북한이 한국정부와의 공식적 관계를 원하지 않는 속에서 이러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남북한 당국자간의 직접대화를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는 북한이 현재 개방하고 있는 KEDO와 같은 유형의 다자적 접근과, 통일전선적 교류협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단기적 노력과 함께, 보다 장기적으로는, 한반도의 통일은 단순히 19세기 이래의 밀린 숙제인 근대국가의 완성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21세기 신문명의 표준인 ‘복합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진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21세기 한반도의 평화, 번영, 정보지식화, 복합문화화, 생태균형화의 복합적 영역에서 적대적인 남북한 당국을 포함한 다양한 행위자들이 어떻게 한반도에서 복합적 관계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관한 21세기 한반도 복합화 대구상이 마련되어야 한다.

하영선/서울대 외교학과교수·국제정치학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