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忠鉉

지난 8일 중국 선양(瀋陽)에서 탈북자들이 미국 및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했거나 진입하려다가 중국 경찰에 체포된 사건의 처리 과정은 국제법과 외교의 갈등이 야기하는 과제를 극명하게 제기해 주고 있다.

영토국의 국내법적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공관의 불가침권’은 이미 17세기경부터 국제관습법으로 발달하여 1961년 비엔나협약의 기본권리로 준수되고 있다.

영토국의 공권력이라 할지라도 공관의 사전 허가 없이는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므로, 범죄인이 도피하여도 영토국으로서는 계속 추적해 들어갈 수 없는 피난자 비호(庇護·asylum) 상태가 가능해진다.

중국은 이번 탈북자 사태의 처리방안에 관하여 “국제법, 국내법과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해결한다”고 밝혔다. 국제법과 선례의 측면에서 보면, 첫째로 외국공관의 불가침권이 범죄인 비호권의 근거는 아니므로 일시적인 비호는 정치범과 난민에 한한다.

피난자가 본국으로 귀환하면 정치적 박해를 받을 것이 분명한 경우, 본국 귀환을 거부하는 실질적 요건으로 고려된다. 1956년 헝가리 봉기 때 민젠티(Minzenty) 추기경이 18년 동안 헝가리 주재 미국 영사관의 비호를 받았으며 1948년 군사혁명에 실패한 토레(Haya de la Torre)를 페루 주재 콜롬비아 대사관이 비호한 사례 등 많은 선례가 있다.

둘째로 1980년대 북한을 탈출한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오스트리아를 떠나 미국에서의 망명처를 구할 때, 미국은 ‘정치적 망명’ 대신에 ‘인도적 조력(humanitarian help)’을 명분으로 하여 본국인 한국으로 귀환할 때 정치적 박해가 우려된다는 해석을 피한 배려가 있었다.

외교공관이 집단으로 움직이는 탈북자에 대해 난민 자격을 개별
적으로 적용하기 힘든 현실적 이유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중국법상 불법 입국 아니면 불법 체류자의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면 ‘박해 우려지역인 본국에로의 송환금지’를 원칙으로 하는 난민조약 정신을 위배하는 부담이 있어 ‘제3국행 허용’을 선택하게 된다. 1970년 일본의 적군파들이 납치한 항공기 요도(淀)호를 우리 정부가 공해 상공으로 추방한 처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이 인도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북한 송환을 피하면서 한국 직행도 피하는 명분이 된다. 제3국은 단순한 경유지로서 자국이 영토적 망명을 수용하였다는 부담을 지지 않는다.

내가 크면 적(敵)도 큰다는 것은 당연한 상황의 논리이다. 이제 탈북 체류자들의 외국공관 활용은 한층 어려워질 것이다. 비정부단체의 지원 활동이 제약을 받기 시작하였고, 외교공관의 경비철저와 불법체류자에 대한 공안단속이 강화되는 동시에 국경지대의 경비도 한층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국제사회에서는 국가주권 행사 위주의 국제법 질서에서부터 개인의 인권과 인도주의가 우선하는 가치 전환이 급속히 정착되어 가고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와 난민담당고등판무관실은 탈북자들의 난민 자격과 인도적 지원의 타당성을 공식적으로 되풀이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맞추어 중국이 탈북자의 영주와 정착을 수용할 수 없다면 국외로 탈출을 지원하는 길 뿐이다. 개인의 인권이란 이를 지켜줄 수 있는 국가의 공권력이 상응하는 의무로 행사되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는 가치이다. 인도주의는 시민단체의 손이 닿을 때에나 얻을 수 있는 시혜(施惠)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외교는 국제사회가 개인의 권리와 국가의 의무로 준수하고 있는 ‘인권’과 ‘인도주의’ 원칙이야말로 탈북자 지원의 기초임을 재확인하여야 한다. 영토국인 중국의 입장을 어렵게 하지 않으면서 수용국인 외국공관의 선택에 대하여는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그 정당성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서울대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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