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19일 입장문을 내고 “북한은 9·19 군사 합의 협상 당시 국군의 대북(對北) 군사 대비 태세를 약화하기 위해 다양한 요구를 했다”고 밝혔다. 9·19 군사 합의 주무 부처인 국방부가 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부당한 요구가 있었다고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은 군사분계선(MDL) 기준 남북으로 60㎞ 이내에서 전투기 등 고정익의 비행을 금지하자고 했을 뿐 아니라 그 구역 내에서는 공대지(空對地) 유도무기 사격 훈련도 하지 말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MDL 이남 60㎞는 MDL에서 약 40㎞인 서울이 포함되는 거리로, 사실상 수도권에서 대북 군사 활동을 못 하도록 족쇄를 채우려 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9·19 군사 합의를 현재 준수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방어 태세 약화 문제 등을 해결할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기호(가운데) 국회 국방위원장이 예비역 장성 등과 함께 19일 9·19 남북군사합의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앞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뉴시스
 
한기호(가운데) 국회 국방위원장이 예비역 장성 등과 함께 19일 9·19 남북군사합의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앞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뉴시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대수장)·국방포럼과 함께 9·19 군사 합의 폐기를 촉구했다. 한 의원과 대수장 등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9·19 합의는 적에게 공격 통로를 제공하는 각종 이적성(利敵性) 조치를 담고 있다”면서 “문재인 전 정부는 한국을 속이려는 북한의 기만성을 간과하거나 알면서도 부화뇌동해 가짜 평화 놀음에 놀아났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도 성명을 내고 “상호 존중의 기본 원칙이 무너진 반쪽짜리 가짜 평화 군사 합의”라며 전면 재검토를 주장했다.

그러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날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9·19 합의 5주년 행사에 참석해 “‘안보는 보수 정부가 잘한다’, ‘경제는 보수 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다”며 “파탄 난 지금의 남북 관계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착잡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군사 합의 폐기 주장에 대해 “남북 관계가 다시 파탄을 맞고 있는 지금도 남북 군사 합의는 남북 군사 충돌을 막는 최후의 안전핀 역할을 하고 있다”며 “군사 합의 폐기는 최후의 안전핀을 제거하는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이날 행사에 참석한 최종건 전 외교부 1차관은 “이 합의 덕에 접경지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됐다”고 했고,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합의는 사실상 최초의 실질적 (남북) 군축의 시작”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북한이 합의 체결 1년 만인 2019년 11월 23일 북한 창린도 일대에서 해상 완충 구역 내 해안포 사격을 하고, 2020년 5월 중부 전선에서 우리 GP에 총격을 가하는 등 최소 18차례 9·19 합의를 위반한 것은 지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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