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아시아담당 부소장 겸 한국석좌/연합뉴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아시아담당 부소장 겸 한국석좌/연합뉴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아시아 담당 부소장 겸 한국석좌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회동 추진과 관련해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핵잠수함 기술을 넘겨받을 경우 미국은 (유사시에) 대만과 한반도 둘 중 어디부터 챙겨야 할지 상당한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분야 등) 협력 수준이 그동안 예상했던 것 이상일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북·러 간 강한 밀착은 중국의 이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분쟁 위험과 군비 경쟁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 정부에는 “매우 강력한 재래식 무기 체계를 구축해 미국 핵전력과 연결하고, 유엔군 사령부 체제를 다시 활성화하는 동시에, G7(7국)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며 세 가지 대처 방법을 조언했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 때문에 유엔 안보리가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이 G7에 들어가야 한다”며 “한국이 G8 혹은 (호주까지 포함한) G9의 하나가 된다면 이른바 ‘글로벌 중추 국가’ 전략의 가장 큰 성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0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북·러 정상 회담의 무대로 지목된 ‘동방경제포럼(EEF)’이 개막했다. 앞서 한·미 정보 당국에 동선이 노출된 김정은이 다른 경로로 ‘깜짝 행보’를 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차 석좌는 “CSIS 위성 사진 분석을 통해 코로나 봉쇄 기간에도 북한과 러시아 간 철도 차량 통행량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북한에서 나오는 것보다)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이동하는 철도 차량이 훨씬 더 많았다”고 했다. 그는 “이런 와중에 양측 최고 지도자가 만나게 된다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협력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북·러 간 군사 기술 이전 등 물밑 거래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북한이 원하는 러시아 핵추진 잠수함 기술과 관련해 “대만 유사시에 북한이 동해나 어딘가에 핵 추진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면 문제가 골치 아파진다”며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 핵 잠수함을 찾고 추적하는 데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 워싱턴 DC에서는 대만과 한반도 비상사태가 동시에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북·러 밀착 이후) 대만 급변 사태와 북한의 기회주의적 침략에 대해 더 많은 우려가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가 군사 기술을 제대로 제공한다면, 북한은 핵 추진 잠수함에 이어 (미국 등을 정밀 타격할) 탄도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다”고도 했다. 한편으로는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이 러시아의 도움으로 한층 진전되면 한·미·일 3국이 모두 군비를 늘리고 군사·안보 공조를 강화할 것”이라며 “이는 중국의 이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동아시아에서 한·미·일의 밀착이 북·러의 밀착을 불렀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는 “북·러의 밀착은 서로의 필요에 의한 ‘정략결혼’이자 예정된 수순”이라며 “캠프 데이비드 회동이 없었더라도 이런 일이 일어났을 것이고 한국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에 무기를 제공하든 말든 상관없이 북한은 이 길을 따랐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김 위원장에게 푸틴과 만남은 ‘하노이의 굴욕’에서 회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라며 김정은이 2019년 2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회담 결렬을 푸틴을 통해 만회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은 신종 코로나로 약 3년간 봉쇄됐기 때문에 식량과 에너지, 의약품 등에 많은 도움이 필요한 것이 분명하다”면서 “푸틴은 무기가 필요하고,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미국의 안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북·러 밀착은 이제 시작이란 뜻이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