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군사대표단에 무기 세일즈하는 김정은 - 북한 김정은이 지난 7월 26일 전승절 70주년 행사 참석차 북한을 방문했던 세르게이 쇼이구(맨 앞 왼쪽) 러시아 국방장관을 비롯한 러시아 군사대표단을 무기 박람회장을 돌며 직접 안내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러 군사대표단에 무기 세일즈하는 김정은 - 북한 김정은이 지난 7월 26일 전승절 70주년 행사 참석차 북한을 방문했던 세르게이 쇼이구(맨 앞 왼쪽) 러시아 국방장관을 비롯한 러시아 군사대표단을 무기 박람회장을 돌며 직접 안내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 정황은 지난 7월 북한 전승절을 계기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방북했을 때부터 포착됐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쇼이구 장관을 무기 박람회에 데려가 직접 안내하는 장면을 북한 매체들은 여과 없이 공개했다. 미국 측 보도대로 이달 말에 김정은이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면 북·러 무기 거래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2년째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는 바닥 난 탄약고를 채워야 하고, 북한은 핵 추진 잠수함(핵잠)·정찰위성·전술핵탄두 개발 완성과 실전 배치를 위한 마지막 핵심 기술이 필요하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한미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쇼이구 장관이 방북했을 때 김정은에게 직접 당장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할 수 있는 탄약과 포탄, 그리고 대(對)전차 미사일 등을 요청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주체포’라고 불리는 자주곡사포와 이에 사용할 170㎜ 곡사포탄 등 포병 무기도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때도 이란에 주체포를 제공했었다. 러시아는 포탄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주체포 같은 구형 무기도 지원받으려는 것이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지난해 수십차례 동·서해상으로 시험 발사한 대남 타격용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인 ‘KN-23′을 러시아에 제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무기 대부분은 러시아 기술 기반이기 때문에 러시아가 KN-23 등 북한 무기를 당장 갖다 써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그래픽=양인성

북한은 포탄 등 재래식 무기 제공 대가로 러시아에서만 받을 수 있는 핵심 무기 기술을 받으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이 2021년 1월 꼭 개발해내겠다고 공표한 ‘5대 전략 무기’ 중 하나인 핵잠 관련 기술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북한은 핵잠을 대미 협상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보고 있다. 재래식 디젤 잠수함은 짧으면 하루, 길게는 2주에 한 번은 물 위로 올라와야 해 장기 작전이 어렵다. 하지만 핵잠은 3~6개월간 잠항(潛航)하다 미 본토 근처에서 기습적으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할 수 있어 미국에 치명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올해만 2차례 발사했다 실패한 군사 정찰위성 탑재 우주 발사체 관련 기술과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정상 각도 발사, 다탄두(MIRV) 기술 등이 이전될 수도 있다. 김정은이 지난 3월 공개한 전술 핵탄두 ‘화산-31′의 공중 폭파 기술 등 7차 핵실험을 위한 핵심 기술 이전도 거론된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위원은 “북한은 핵잠, ICBM, 전술핵 등 여러 전략무기를 개발 중이지만 완성 단계로 넘어갈 결정적 막판 기술이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각 무기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이번에 러시아에서 받아 끼워 맞추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에 러시아의 첨단 무기 기술이 이전될 경우 한국형 3축 체계 등 대북 핵·미사일 방어망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한미는 주한미군의 사드와 패트리엇, 천궁 등으로 방공망을 구축하고 있지만 북한 지상이 아닌 동해 등 측면에서 날아오는 SLBM이나 전략순항미사일 등에는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북한은 이번에 러시아에서 위성항법 시스템인 ‘글로나스(GLONASS)’ 협력을 받아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러시아의 위성 위치 정보를 공유받는다면 북한에서 주일 미군기지까지 사거리인 전략순항미사일의 운용력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

북·러가 군사 협력을 전면화하면 북핵의 외교적 해결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북 제재의 효력도 급감할 수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대북 제재에 찬성한 러시아가 스스로 그 제재를 허무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은 “잠수함은 잠수함으로밖에 막을 수 없다”면서 “북한의 핵잠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정부가 호주처럼 미국에서 핵잠 기술을 도입하는 방안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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