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달 중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갖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4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무기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포탄 등 무기 지원을 받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인 가운데 양국 정상이 직접 만나 이를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러시아에게 포탄 등을 제공하는 대가로 인공위성 및 핵추진 잠수함 등 핵 개발 기술을 제공해달라고 요구할 예정이라고 NYT는 전했다.

북러 정상간 회담 계획이 사전에 이렇게 자세하게 공개된 것은 전례가 없다. 이번에도 미 정부가 양국간 움직임을 사전 공개해 이들의 밀착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7월 27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군사대표단을 위해 '성대한 연회'를 마련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8일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 뉴스1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7월 27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군사대표단을 위해 '성대한 연회'를 마련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8일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 뉴스1

NYT는 이날 익명의 관리들을 인용해 “지난달 말 김정은 경호를 담당하는 인원들을 포함한 20여명의 북한 대표단이 김정은의 방러를 계획하기 위해 최근 기차로 러시아를 방문했다”며 “김정은은 이달 방러해 푸틴을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무기를 러시아에 더 많이 공급할 가능성과 기타 군사 협력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북한 대표단은 평양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기차로 이동한 후 비행기 편으로 모스크바까지 이동했다고 한다. NYT는 “(김정은 경호 인력까지 방러 일정에 포함시킨 건) 북한이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며 “해당 정보에 대해 브리핑 받은 관리들에 따르면 이들의 (답사) 일정은 약 10일이 걸렸다고 한다”고 전했다.

미 관리들에 따르면 두 정상은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들은 극동연방대학교 캠퍼스를 함께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김정은은 러시아 태평양 함대사령부 소속 해군 함정이 정박하고 있는 33번 부두도 방문할 계획이라고 NYT는 전했다. 동방경제포럼 개막식 전날인 9월 9일은 북한 정권수립일(99절)이다.

미 관리들은 김정은이 평양에서 방탄 열차를 타고 러시아 태평양 연안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푸틴 대통령을 만날 것이라고 전했다. NYT는 “김정은이 모스크바로 향할 가능성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했다.

김정은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약 950마일(약 1500km) 떨어진 우주발사 기지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동방 우주기지)도 방문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곳에서 작년 푸틴과 러시아 우방 벨라루스 루카셴코 대통령이 회담을 가졌었다.

이 같은 정상회담 계획은 지난 7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평양을 방문하면서 구체화됐다고 NYT는 전했다. 당시 김정은은 쇼이구 장관을 만나 군사 협력 강화 방안을 제시하고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요청했다고 미 관리들은 전했다. 그러자 쇼이구 장관이 “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하는 것이 어떠냐”며 맞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북한 ‘포탄 제공’, 러 ‘핵 기술 전수’ 현실화되나

미 정부는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포탄을 받는 대가로 핵무기 개발과 관련한 첨단 부품 및 기술을 북한에 제공할 가능성을 우려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NYT는 “푸틴은 김정은이 러시아에 포탄과 대전차 미사일을 보내주길 원하고 있다”며 “김정은은 러시아가 인공위성과 핵추진 잠수함 등 첨단 기술을 북한에 제공해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미 관리들은 전했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또한 러시아에 식량 지원도 요청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백악관은 지난달 30일 브리핑을 통해 김정은과 푸틴이 무기 거래를 위해 수차례 친서를 교환했다는 정보를 공개했었다. “러시아가 부족한 탄약 등을 북한으로부터 조달하려고 한다”고 지난해 9월 이후 여러 차례 경고해 왔던 미 정부는 매번 미 정보 당국의 기밀 정보를 해제해 대중에게 공개해왔었는데, 이번에도 북·러 간 움직임을 미리 공개해 양국 밀착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NYT는 “실제 북한의 포탄 이전 계획에 대해 백악관이 미리 경고한 뒤로 평양과 모스크바 간의 이전 협력이 중단된 상황”이라고 했다.

NYT는 “북·러 정상회담 계획에 대한 정보는 이전의 (백악관) 경고 수위를 훨씬 뛰어넘는다”라며 “이번 정상회담 계획은 미국 정부에 의해 기밀이 해제되거나 하향 등급 조정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NYT는 북러 정상회담 계획을 익명의 당국자발로 보도한 데 대해 “기밀 해제가 되지 않아 미 관리들은 (회담 계획에 대해) 논의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에이드리언 왓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NYT 보도에 대한 확인을 요청하는 본지 질의에 “우리가 공개적으로 경고했듯이 러시아와 북한 간의 무기 협상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우리는 김정은이 이러한 논의(무기 거래 논의)가 계속되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의 고위급 외교적 관여를 포함 할 것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왓슨 대변인은 “최근 존 커비 NSC 전략소통조정관이 ‘우리는 계속해서 러시아가 북한 등 다른 국가로부터 군사 장비를 획득하려는 시도를 식별하고 폭로하고 대응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국무부도 본지 질의에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우리는 북러 간 무기 거래가 가능하도록 노력하는 개인과 단체를 폭로, 제재함으로써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다”며 “우리는 러시아가 북한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할 준비가 된 다른 국가에서 군사장비를 확보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식별, 폭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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