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9일 미국의 민간 위성 업체 ‘맥사 테크놀로지(Maxar Technologies)’는 전날 밤 10시 5분쯤 촬영한 것들이라며 북한 열병식을 찍은 위성사진 몇 장을 공개했다. 이 사진들엔 전날 밤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북한군 건군 75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미사일들이 광장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모습들이 비교적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과거엔 정찰위성 수준은 돼야 수백㎞ 상공에서 이 정도로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민간 위성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픽=양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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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무기도 식별할 수 있는 SAR 위성

맥사 테크놀로지는 우크라이나전 개전 초기에도 밀집한 러시아군 전차부대, 도로에 64㎞나 늘어서 정체 상태에 빠진 러시아군 사진 등으로 세계 주요 미디어에 등장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맥사 테크놀로지는 30㎝급 해상도의 EO(Electro Optic·전자광학) 카메라 위성까지 운용한다. 이는 과거 정찰위성급(級) 해상도다. 30㎝급 해상도는 수백㎞ 상공에서 30㎝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맥사 테크놀로지 위성은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EO 카메라 위성이어서 구름이 끼어있는 등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지상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북 야간 열병식 때 구름이 끼어 있었다면 맥사 테크놀로지 위성은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게 SAR(Synthetic Aperture Radar·영상 레이더) 위성이다. SAR은 지상 및 해양에 대해 공중이나 우주에서 레이더파를 순차적으로 쏜 이후 레이더파가 굴곡면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미세한 시간차를 처리해 지표를 관측하고 목표물을 탐지하는 레이더 시스템이다. 레이더를 사용하기 때문에 낮은 물론 밤이나 악천후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특히 디코이(가짜 무기)를 식별하거나 적 병력·장비의 이동 상황을 추적하는 데도 유용하다. 우크라이나전이 초래한 큰 변화 중의 하나는 처음으로 민간 SAR 위성이 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전에 SAR 위성은 정부·군 기관에서 주로 활용했다.

그래픽=양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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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전서 초소형 SAR 위성 활약

우크라이나는 지난해부터 핀란드 아이스아이(ICEEYE)사의 초소형 SAR 위성 1대를 도입해 운용 중이다. 지난해 9월 올렉시 레즈니코우 우크라이나 당시 국방장관은 소셜미디어에 “위성 작동 첫 이틀 동안 적(러시아군)이 숲 지대에서 위장하려고 시도했지만 60 대 이상의 전투 장비가 감지됐다”며 “이는 아이스아이 위성이 SAR 기술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위장된 장비는 광학 위성으로는 감지하기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SAR 위성의 효용성을 소개했다. 그는 “SAR 위성은 날씨가 나쁘거나 흐리거나 눈이 내리는 가을과 겨울에 특히 적합하다”며 “낮과 밤에 똑같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아이스아이 SAR 위성은 지난 6일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카호우카댐이 일부 파괴된 직후 피해 지역 확산 등을 신속하게 파악하는 데에도 활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급격히 고도화하고 있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선 우크라이나처럼 SAR 위성, 특히 소형 및 초소형 SAR 위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북한은 한·미 양국군을 기만하고 한국형 3축 체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미사일 이동식 발사대 숫자를 급격히 늘리고 있고, 심야 등 취약 시간대에 저수지·철도 등 의외의 장소에서 기습 발사를 거듭하고 있다. 한·미 정찰 수단을 기만하는 방법도 다양화하고 있다. 각종 미사일 이동식 발사대 숫자는 과거엔 100여 기 수준이었지만 지난 수년간 200기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종전 전자광학 위성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마침 우리 정부와 군 당국도 대형 정찰위성 5기를 도입하는 425사업에서 SAR 위성만 4기를 도입하고, 다부처 사업으로 2030년까지 36기 이상의 초소형 SAR 정찰위성을 도입하는 등 SAR 위성 도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425사업으로는 위성이 북한 지역 상공을 지나며 감시하는 재(再)방문 주기가 2시간에 달하기 때문에 다수의 초소형 위성으로 재방문 주기를 30분으로 단축시키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월 2030년까지 1조4223억원을 투자해 총 40기의 초소형 위성(SAR위성 36기, 전자광학 카메라 위성 4기)을 궤도에 올리는 초소형 위성체계 개발사업을 발표했다.

(위에서부터) 아이스아이, 한화시스템, KAI(한국항공우주산업)의 초소형 SAR 위성들.
 
(위에서부터) 아이스아이, 한화시스템, KAI(한국항공우주산업)의 초소형 SAR 위성들.

◇해외 민간 업체보다 떨어지는 해상도

하지만 425사업이 당초 계획보다 지연되고 있고, 다부처 SAR 위성 도입도 2028년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어서 2028년까지 4~5년간의 갭(gap)을 어떻게 메울 것이냐가 고민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일각에선 미 정부기관들이 정보기관 및 군 정보 분석용으로 민간 업체 SAR 위성들을 적극 활용하는 정책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해외 민간 SAR 위성 업체들이 판매하는 사진보다 떨어지는 해상도도 문제다. 최근 누리호 3차 발사 때 실린 SAR 탑재 차세대 소형 위성 2호의 해상도는 5m에 달하고, 앞으로 도입할 SAR 위성의 해상도는 50㎝~1m 수준이다. 반면 미국 움브라사는 25㎝급, 핀란드 아이스아이는 50㎝급 해상도 사진을 서비스하고 있다.

이에 따라 ‘뉴 스페이스’ 시대에 발맞춰 민간 부문·업체의 역할과 역량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2045년 정부가 제시한 글로벌 우주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수익 창출 및 비즈니스적 사고에 기반한 업체의 경쟁력 강화가 중요하다”며 “현재 업체가 발 벗고 뛰기에는 기술적, 사업적 규제가 많기 때문에 업체와 정부 출연기관 간 역할 분담이 될 수 있는 실질적인 개발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핀란드 업체가 세계 민간 SAR 위성 선두주자

비록 최근 1차 발사는 실패로 끝났지만 북한은 정찰위성을 ‘5대 전략 무기’의 하나로 선정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여러 차례 시찰하는 등 개발에 주력해왔다. 북한의 첫 정찰위성 ‘만리경-1호’는 전자광학 카메라 위성으로 해상도는 우리나라 정찰위성(다목적 위성)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조셉 버뮤데즈 선임 연구원은 북 정찰위성 해상도가 3m나 그 이하일 것으로 분석했다. 민간 상용 전자광학 위성도 1m 이하 해상도인 경우가 많으며, 미 최신형 정찰위성은 5㎝급 해상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백㎞ 상공에서 신문 헤드라인을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이다. 북한은 아직 SAR(영상 레이더) 위성은 개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지구 관측위성, 정찰위성은 전자광학 카메라를 많이 활용한다. 하지만 전천후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SAR 위성의 장점 때문에 민간 부문에서도 SAR 위성 활용이 급속히 늘고 있다. 세계 민간 SAR 회사는 미국의 카펠라, 엄브라, 핀란드의 아이스아이 등이 대표적이다. 아이스아이는 2018년 세계 최초로 상용 SAR 초소형 위성을 발사한 뒤 현재까지 초소형 위성 27기를 쏘아 올려 이 분야의 선두 주자로 자리 잡고 있다.

카펠라는 10기, 엄브라는 6기의 SAR 초소형 위성을 각각 운용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선 한화시스템, KAI(한국항공우주산업) 등이 정부의 다부처 초소형 위성 체계 개발 사업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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