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관계자가 4일 다시 연결된 남북 통신선으로 시험 통화를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군 관계자가 4일 다시 연결된 남북 통신선으로 시험 통화를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북한이 끊었던 남북 통신선을 50여일 만에 다시 연결했다. 북은 우리 정부에 “밝은 전도(前途)를 열어나가는 데 선결돼야 할 중대 과제 해결에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밝은 전도’란 문 정부가 원하는 남북 정상회담 같은 이벤트이고 ‘중대 과제’란 김정은 남매가 조건으로 내건 북핵 인정과 대북 제재 해제, 한미 동맹 해체를 말하는 것이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남북 이벤트도 없다는 협박이나 다름없다.

지난 8월 통신선 연결 직후 문 정부가 북 요구대로 한미 훈련 규모를 대폭 줄였는데도 북은 “배신적 처사”라며 통신선을 끊었다. ‘배신’이란 비공개 채널로 합의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는 항의 아닌가. 문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종전 선언’을 제안하자 김정은 남매가 바로 호응한 것도 서로 얘기가 돼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일 것이다. 2018년 평창 올림픽 이후 남북 이벤트가 쏟아질 때도 그랬다.

문 정부가 ‘종전 선언’에 이어 ‘통신선 연결’을 언급하자 김정은이 ‘복원 의사’를 밝혔다. 김여정이 핵·미사일 도발을 ‘도발이라 하지 말라’고 하자 문 정부 발표에선 ‘도발’이란 말이 사라졌다. 김정은 남매가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하자 한국 외교장관은 미국에 “제재를 완화할 때”라며 맞장구치기도 했다. 남북 이벤트를 하려고 한미 동맹까지 흔들고 있다. 정해진 수순대로 착착 진행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금 남도, 북도 대놓고 ‘정상회담’을 말하고 있다.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에서 문재인·김정은·시진핑이 손잡고 등장하는 것이 시나리오의 결말일 것이다. 그 징검다리로 남북 연락사무소 재설치와 화상 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화상 회담에서 김정은이 한국 TV에 나와 솔깃한 얘기를 한다면 베이징 회담 분위기도 달아오를 것이다. 코로나로 국경까지 차단한 북도 화상 회담은 좋아할 것이다. 대선용 남북 이벤트가 각본대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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