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이 30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북한 김정은이 30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북한 김정은이 ‘종전 선언’을 언급하며 전제 조건으로 “상호 존중이 보장되고 이중적 태도와 적대시 정책부터 철회돼야 한다”고 했다. “10월 초 남북 연락선 복원 의사”도 밝혔다. 며칠 전 김여정도 종전 선언과 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 정상회담까지 거론하며 김정은과 같은 전제 조건을 내걸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초청받지도 않은 유엔 연설에서 ‘종전 선언’을 제안한 이후 김정은 남매가 바로 호응하고 나선 것이다. 서로 얘기가 돼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2018년과 유사한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평창 올림픽에 북한을 초청하자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참가 용의’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후 김여정 방한에 이은 남북·미북 정상회담 이벤트와 각종 비핵화 쇼가 봇물처럼 터졌다. 문 정권은 그해 지방선거와 작년 총선에서 압승했다. 당시 정권은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진 것처럼 선전했지만 남북 정상 행사가 그런 식으로 진행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비공개 채널로 미리 합의된 시나리오대로 진행된 것이다. 이젠 국민도 다 안다.

지금 정권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어게인 2018′을 계획하고 있다. 남북 이벤트로 지지층 결집과 중도층 표를 얻으려는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 ‘삶은 소대가리’ ‘미국산 앵무새’라고 막말하던 김여정이 돌연 ‘종전 선언’에 호응하며 정상회담까지 꺼낸 건 결코 우연이라 볼 수 없다. 이제 TV로 남북 화상 정상회담이 생중계되고,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북 정상이 손잡는 모습이 연출될 수 있다. 이 각본은 이미 결정됐을 수도 있다.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잇단 미사일 실험에 대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미국은 물론 영국과 독일 등도 ‘규탄’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 미사일의 표적인 한국 정부는 ‘유감’이 전부다. 김여정이 발끈하자 ‘도발’이란 말도 못 쓰고 있다. 김정은 남매가 말하는 ‘상호 존중’과 ‘적대 철회’는 북핵 인정과 대북 제재 해제, 한미 동맹 해체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 말 없는 정권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이면 대선 한 달 전이다. 문 정권 임기가 사실상 한 달 남은 시점이다. 임기가 사실상 끝난 정권이 무슨 권한과 능력으로 북한과 중대한 합의를 하나. 대선용 TV 쇼이자 선거 카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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