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시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시스

정의용 외교장관이 21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북한군의 우리 GP 총격과 서해 해안포 사격에 대해 “사소하다” “절제했다”고 했다. 작년 북한군이 쏜 고사총 4발은 우리 GP 외벽에 조준한 듯 탄착군(彈着群) 형태로 명중했다. 14.5㎜ 고사총은 장갑차도 뚫는 위력이다. 자칫했으면 우리 장병의 목숨이 위태로웠는데 어떻게 ‘사소’라는 말을 하나. 2019년 김정은은 연평도 포격 9주기에 서해 NLL 인근 창린도 부대를 방문해 “한번 사격해보라”고 지시했다. 남북 군사 합의 핵심인 ‘서해 포 사격 중지’를 대놓고 파기한 것이다. 대한민국 영토를 다시 공격할 수 있다는 협박인데도 “굉장한 절제”라고 했다. 오죽했으면 외교부가 “(장관의) 용어 선택이 적절치 못했다”고 했겠나. 정 장관이 설익은 협상 내용을 공개한 ‘한·미 백신 스와프’에 대해서도 ‘백신 협력'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해 달라고 했다.

그는 북이 문재인 대통령을 ‘삶은 소대가리’라고 조롱한 것에 대해 “협상을 재개하자는 절실함이 묻어 있다”고 했다. 청와대도 개·바보라는 북 막말을 “협상 의지 표현”이라고 했었다. 문 정부는 북의 손짓 발짓 하나까지 협상 의지로 해석하고 싶어 하는데 북은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협상에 나온 적이 없다. 오히려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반면 일본이 문 정부의 위안부 합의 파기를 비판한 것에 대해선 “우리를 매도하는데 일본이 그럴 자격이 있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정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강제 북송한 탈북 어민 2명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안 봤다”고 했다. 헌법 3조에 따라 흉악범이라도 북 주민은 우리 국민이다. 국민 자격도 맘대로 박탈하는 발언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아직 있다”고도 했다. 청문회 한 달 전 김정은은 당 대회에서 ‘핵’을 36차례 강조했다. 전술핵과 핵 추진 잠수함 개발까지 공언했다. 어디에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말인가. 안보실장 시절엔 “군사적 능력은 우리가 북한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고 했다. 핵 없는 나라가 핵 가진 집단보다 ‘군사적으로 앞선다’는 말을 누가 믿나. “북이 TEL(이동식 발사대)로 ICBM을 발사할 능력이 없다”고도 했다. 그런데 북은 2017년에만 세 차례나 TEL로 ICBM을 쐈다.

외교장관의 말은 국제사회에서 그 나라의 공식 입장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단어 하나 하나에 극도의 신중을 기한다. 1시간 인터뷰를 해도 발라서 쓸 말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입만 열면 사고가 나서 아랫사람들이 주워 담으려 전전긍긍하는 외교부 장관은 다시 보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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