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으로 헤어진 혈육들이 50년 만에 다시 만난 3박4일간의 상봉 일정이 모두 끝났다. 이산가족 상봉의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파견된 외국기자들은 이번 역사적 혈육상봉을 취재하면서 현장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조선일보에 특별기고했다. 미국 CBS의 도쿄특파원 빅터 피크와 서울특파원으로 일하는 일본 마이니치의 오사와 분고, 독일 DPA의 아이쿠트 타브셀, 중국 신화통신 리바오둥(이보동) 기자 등이 기고했다. /편집자

남북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모습에 세계는 한국과 함께 울었다. 우리는 형제 부모가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그러나 눈물로 얼룩진 눈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국 언론이 보도한 사진 속에서 우리는 이 눈물이 기쁨의 눈물이자 엄청난 고통의 눈물임을 엿볼 수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난 서울과 평양의 200명은 휴전선이 설치된 후 반세기 동안이나 가족과 헤어져 있던 사람들이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설치된 이 휴전선이라는 장벽은 한국사회에 새겨진 지리적 상처를 상징한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사회가 이 상처로 피흘리고 있다는 것이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드러났다.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10년 전 독일의 그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독일의 분단은 정치적 분단이었을 뿐이다.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서독인들은 동독에 친척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인들과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매번 비자를 신청해야 하는 등 동독 방문이 매우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경을 넘는 것은 언제나 가능했다. 동독을 여행할 여유가 없다면 언제든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누군가 미리 읽어보긴 했지만, 정치적 사안에 관한 것만 아니라면 어떤 내용이건 상관없었다.

그러나 남측 사람들은 북의 가족들이 살아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북한에 가족을 둔 한국인들은 700만명이 넘지만, 운좋은 100명만이 이번 행사에 참가할 수 있었다. 더이상 젊지 않은 이들 이산가족의 유일한 소원은 죽기전에 헤어진 가족을 만나보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독일에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 꼭 맞는 속담이 있다. ‘뜨거운 돌 위에 떨어진 물 한방울’이라는 속담이다. 늙은 이산가족들 중 몇명이 더 가족을 만나게 될까. 이산가족의 눈물을 보면서 깨달은 사실은 곧 모든 것이 너무 늦은 것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남북한 정부가 올해 안에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한반도는 영원히 분단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아닐지 모르나 사회적으로는 영원히 분단될 것이다. 사회적 통일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남과 북의 불쌍한 노인들이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코엑스에서 가족을 만난 행운의 100명 중에서도 너무 늦은 경우가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채 자식을 알아보지 못한 그 노인의 얼굴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옳았고 여전히 옳다. 햇볕정책은 남북 정상의 역사적 악수를 가능하게 했고,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이뤄냈으며, 또다른 많은 일들을 이뤄냈다. 이산가족 문제는 정치적 타결점을 찾을 시간이 없는 시급한 문제다. 세계는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감동적인 장면을 지켜봤으며 앞으로도 지켜볼 것이다. 이번 만남이 85년처럼 끝나서는 안된다. 이산가족의 상봉은 영원히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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