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월령가(농가월령가) 두 권과 원고료 50만원이 든 흰 봉투.

해방후 30대로 교우했던 인사동 고서점 주인과 6·25전쟁 때 북으로 갔던 국어학자를 50년만에 이어준 끈이었다. 8·15상봉 북한 방문단의 일원인 류열(82·김일성대 명예교수)씨와 한국 고서점 역사의 산 증인인 통문관 주인 이겸노(이겸노·91)옹의 만남이다.

“나 통문관 주인이오. 기억 안 나오?”

16일 오후 3시 잠실 롯데월드 민속관 입구. 지팡이를 짚은 채로, 이 옹은 막 전시장에 들어서려는 류 교수를 막았다. “아아~” 짧은 탄식 후에 류 교수는 “이게 얼마만입니까? 알지요, 알아”라고 나직이 대답했다. 쉬이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이 옹은 노란 표지의 ‘농가월령가’ 두 권을 급하게 내밀었다.

“뭐지요?”

“해방 즈음해서 당신이 쓴 농가월령가 해설서 있지요? 그게 이 책에 들어있습니다. ”

“아아 아니, 그 책이 아직…. ”

책을 들춰보며 그저 감격한 표정만 지을 뿐, 말을 잇지 못했다. 일정에 밀려 전시장으로 몰리는 류 교수를 세우고 이 옹은 상의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가족들을 그렇게 찾아도 없더니만…. 원고료요. ” 16일 아침 서울 효자동 집 근처 은행에서 급히 찾은 돈이다. 그뿐, 두 사람은 감격과 아쉬움이 뒤범벅된 눈짓을 나누며 헤어졌다.

15일 TV에서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시청하던 이 옹은 ‘류열’이란 이름을 확인하고 놀랐다.

이 옹은 흥분으로 밤을 지새고, 16일 날이 밝자마자 은행에서 찾은 50만원과 농가월령가를 들고 조선일보를 찾아 류 교수와의 만남 주선을 부탁했다. 5분도 안 되는 아쉬운 만남이었다.

/이지형기자 jih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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