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20년 집권론' 외치는데 범보수 대통합은 지지부진
탄핵 평가는 후대 역사에 넘기고 對北 인식 등 쟁점 놓고 토론해야
 

이선민 선임기자
이선민 선임기자
남북관계와 경제·원전 정책 등에 있어 문재인 정부의 폭주(暴走)가 계속되면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범(汎)보수 정치권이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수그러들 줄 모르는 문 정부의 국정 전횡(專橫)을 막으려면 보수 우파는 물론 중도 보수까지 아우르는 '빅 텐트'를 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개헌을 통한 근본적인 체제 변혁 시도와 더불어민주당의 '20년 집권론'이 일차적으로 판가름 나는 2020년 총선에서 집권 세력의 승리를 저지하려면 갈래갈래 찢어져 있는 보수 정치 세력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범보수 정치권의 대통합은 그 필요성에 대부분 공감하고 있는데도 지지부진하다. 범보수 정치권의 대주주인 자유한국당에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김성태 원내총무 등이 나서 군불을 때고 있지만 당 안팎 유력 인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통합의 또 다른 축이 돼야 할 바른미래당의 하태경 최고위원과 전원책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은 날 선 감정적 공방을 주고받았다.

범보수 정치권의 통합이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뭉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하지 않고 덩치부터 키우고 보자는 '묻지 마 통합' 방식이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은 범보수의 유력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이 당면한 혼란스러운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대선과 지방선거의 패배 이후 현실 문제에 입을 다물거나 해외로 떠났다. 그러고는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이 자기 입에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공학적 계산에 의해 범보수 정치권의 통합이 이뤄진다고 해도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독일의 석학 막스 베버는 명저 '소명(召命)으로의 정치'에서 정치가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 자질로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을 꼽았다. 그리고 정치가로 입신하는 출발점인 열정은 사상과 이념에 바탕을 둔 '대의(大義)'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이성에 투철해야 자신은 물론 지지자들이 현실에 헌신적으로 뛰어들면서도 맹목적인 '불모(不毛)의 흥분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범보수 정치권에 필요한 것은 이성(理性)에 바탕을 둔 열정에서 나오는 치열한 토론이다. 선진국에서 유력한 정치 세력이 위기에 처하면 격렬한 노선 논쟁을 통해 새 이념과 지도자가 부상한다. 1990년대 후반 오랜 침체에 빠졌던 유럽 사회민주주의를 구원한 영국의 블레어와 독일의 슈뢰더가 그렇게 탄생했다. 그들은 과거의 실패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논쟁을 주도했다.

이런 점에서 자유한국당 초선 의원들이 대선 주자급 보수 인사들을 초청하면서 그들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을 묻겠다고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간신히 아물기 시작한 상처를 다시 건드려서 어쩌자는 것인가. 지금 일각에서는 현 집권 세력이 다음 총선 직전에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해서 보수의 분열을 유도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탄핵을 재론하는 것은 보수의 통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역사의 장(章)으로 넘어간 '박근혜 시대'는 후대의 역사가들에게 넘기고 정치인들은 미래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국민은 범보수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다. 우파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좌파는 인정하지 않는 듯한 기묘한 대북(對北) 인식의 착종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포퓰리즘과 평등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소득·지역·교육의 불균형 을 완화하는 방법은 없는가. 우리 사회를 다시 하나로 묶고 발전시킬 사상적 지표는 자유주의인가, 공화주의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

난세에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모두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이런 난제들에 대한 해답을 이념과 정책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그리고 대선 직전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논쟁을 전개할 때 범보수 정치권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30/20181030043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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