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의 가장 큰 책무는 김정은이 그와 50년 함께 살
南쪽 청년 세대에 '갑질'할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것
 

황대진 정치부 차장
황대진 정치부 차장

1984년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반도 최고의 '수퍼 갑(甲)'이다. 그는 휴전선 이북의 모든 생산수단을 상속받았다. 2500만 노동력과 광물 자원만 약 3200조원(한국광물자원공사 추정)에 이른다는 토지가 모두 제 것이다. 핵무기도 손에 쥐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방북 중 "김 위원장의 지도력과 위대한 결단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고 했다. 우리나라 최고 부자이자 시중에서 '갑 중의 갑'이라 부르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이런 김정은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김정은은 우리 젊은이들이 취직을 꿈꾸는 회사를 이끌고 있는 이 부회장을 사실상 오라 가라 했다. 문 대통령과 방북길에 오른 이 부회장은 김 위원장과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북한 노동당 서열 40~50위쯤 되는 리룡남 부총리가 "(이 부회장은) 여러 측면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이던데?" 하고 관심을 보인 정도다.

회담을 보며 김정은 또래의 이 나라 청년들을 생각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로 살고 있다. 이 정부 들어선 '내 집' 포기까지 더해져 '4포'라고도 한다. 사회에선 기성 '86 운동권' 세대 등에 치여 '을(乙)'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자리를 못 잡은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은 앞으로 김정은과 같은 땅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김정은이 할아버지 김일성 나이만큼 산다면 50년 가까운 세월이다.

이번에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여러 합의를 내놨다. 남북 군사 분야 합의부터 국회 회담, 올림픽 공동 개최 등 많은 분야를 다뤘다. 그러나 북이 약속을 지킬지는 지켜볼 문제다. 과거에도 불가침 협정,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 등 모든 합의를 깬 것은 북한이었다. '갑질'의 본질은 법과 도덕,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고 힘을 과시하는 데 있다. 김정은의 갑질은 이미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회의 때 졸았다고 인민무력상을 죽이고, 자세가 불량하다며 부총리를 총살했다. 고모부를 역도로 몰아 기관총으로 죽였고, 해외를 떠돌던 이복형을 독살하기도 했다. 이렇게 죽인 사람만 줄잡아 70명이 넘는다.

김은 자신과 같은 또래의 우리 청년의 목숨도 앗아갔다. 천안함을 폭침해 1984년생 동갑내기 임재엽·심영빈 하사 등 46명을 희생시켰다. 8개월 뒤엔 연평도에 포탄 170발을 쏟아부어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이 숨졌다. 김정일에게서 권력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자기 입지를 확고히 하려고 벌인 일들이다. 그런 김정은이 지난 4월 문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연평도'를 거론했다. "언제 북한군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도 오늘(회담의 성과를) 기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의 악행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김정은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50년 집권론'을 주장한다. 김정은이 별일 없이 계속 집권한다면 얼추 비슷한 시간이다. 이번 회담으로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올랐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정치적 고비 때마다 꺼내든 게 '북한 카드'다. 지난 6월 지방선거 압승도 그 랬고, 최근 불거진 '경제 실정(失政) 비판 여론'도 남북 정상회담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거듭될수록 김정은의 수퍼 갑 위세는 더 커질 것이다. 문 대통령은 어제 귀국 회견에서 김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밝혔지만 이번에도 그저 북의 선의(善意)에만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 이 나라의 장래가 '수퍼 갑 김정은'의 손에 넘겨진 듯한 요즘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20/20180920044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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