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21세기 새 아침이 밝았다. 21세기에 다가올 도전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첫째, 탈냉전의 상황에서도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개입의 성격은 변화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소련이라는 가상 적(적)도 사라졌는데 왜 개입해야 하느냐는 미국내의 회의적 여론도 없지 않다. 따라서 미국 행정부는 비용은 최소화하면서도 같은 효과를 내는 방안을 찾게 되었고 그 중 하나가 신안보협력지침에서처럼 일본의 안보 역할을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중국은 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고, 그 동안 서방세력의 견제 때문에 억제 당해왔다고 생각하는 대국 역할을 되찾고자 부심하고 있다. 결국 중국과 일본이 미국과 버금가는 군사 및 경제대국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러시아도 국내경제가 수습되면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다극화 추세와 불확실해지는 국제환경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둘째, 한국은 그 동안 안보전략상 한-미 동맹관계를 주축으로 삼아왔으며 여기에 한-미-일간의 삼각 협력관계가 보완적인 축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진입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중국경제의 영향력이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에서 더욱 증대될 것이다. 또한 97년도 경제위기 발생 직후 보았듯이 동아시아 경제협력을 강조하는 일본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안보적 차원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원심력과, 경제, 문화적인 차원에서 동북아 지역으로 향하는 구심력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우리의 국가이익이 극대화될 것인가?

셋째, 일본은 선진 기술로 무장한 경제대국이고, 중국은 엄청난 잠재력과 저임금으로 한국의 시장을 잠식해오고 있다. 양 경제대국 사이에 끼여있는 한국은 어떠한 경제 전략으로 대응해야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최근 동북아 3국간의 경제협력 문제가 자주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본적으로 양 경제대국에는 없는 독특한 비교우위와 강점을 키우지 못하면 경제협력 심화로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을 것이며, 양국 경제에 함몰되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만의 비교우위와 강점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려 할 때 생각해야 할 교훈이 있다. 그것은 역사에는 비약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21세기 초엽의 일차적 과제는 냉전의 유산을 극복하는 일이다.

국제적 차원에서 동북아의 역학구조가 갈수록 복잡해진다는 것은 곧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주도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러한 상황이 가속화되기 이전에 남북한 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한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주변국들의 장단에 춤을 추는 20세기의 부끄러운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통일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남북한 경제공동체 정도는 형성시켜 놓아야 중국과 일본 양 대국 사이에서 우리 민족경제의 규모와 비교우위도 키워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안보의 축으로는 미국을 끌어들이되, 중국과 일본과는 정치, 경제, 문화적 협력을 심화시켜나가는 중층적(중층적)인 대외전략의 구사가 필요하다.

국내적 차원에서도 냉전구조의 유산이 도약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30여년간의 고속성장은 박정희 모델에 근거한 동원경제 체제로 가능했다. 이러한 동원경제체제는 군사정권의 주도하에 민주주의와 형평이라는 가치를 희생하고 노동을 억누를 수 있었던 냉전 상황에서, 그리고 무역과 금융의 세계화가 심화되지 않았던 국제환경에서만 가능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직적인 경제체제로는 일본과 중국에게는 없는 기민성과 우리만의 비교우위를 강화할 수 없다. 결국 경제체제의 유연화가 21세기 초엽을 맞는 우리의 지상 과제이다. 경제체제의 유연화는 재벌체제의 개혁과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동시에 의미하며, 이것을 주도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은 정치개혁을 통해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권위가 회복될 때만 확보될 수 있다. 21세기의 역사도 변화를 통해 거듭나려는 의지를 가진 민족들에 의해서만 주도될 것이다.

윤 영 관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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