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지키는 미디어 동맹군]

- 최전방엔 보수성향 '폭스뉴스'
17년째 케이블 채널 시청자 1위
트럼프에 적대적 인물들 맹공, 공화당 지지자들 이탈 막아내

- 후방엔 지역방송 '싱클레어 그룹'
美전역 193개 지역방송국 소유, 가구수 점유율 39% 언론
재벌대선전부터 親트럼프 보도 공세… 방송지역 대부분서 트럼프 강세
 

김창균 논설위원
김창균 논설위원

지난주 미국 정가의 최고 화제는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이 4월 17일 발간한 회고록 '더 높은 충성심(A higher loyalty)'이었다. 코미 전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1월 충성을 요구하면서 수사 결과 조작을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자신이 작년 5월 해임됐다는 암시를 담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회고록 내용 중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를 중심으로 보도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케이블 뉴스 채널인 폭스뉴스는 회고록 내용 대신 필자인 코미 전 국장의 신뢰성을 문제 삼는 보도를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밤 시사 프로를 진행하는 터커 카슨은 "코미처럼 당파적 인간은 애초부터 FBI 국장을 맡아서는 안 되는 거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월 20일 취임 즉시 그를 잘라야 했다"고 주장했다.

전직 검사인 지니 피로는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정의(justice)'에서 코미 전 국장을 애칭 '짐'으로 부르면서 "짐, 당신은 잘난 척하고, 독선적이고, 습관적인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인물들을 인정사정 보지 않고 공격한다.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11월 대선 때 러시아가 개입했는지를 수사하는 뮬러 특검 역시 예외가 아니다. 폭스뉴스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간판 스타 숀 해니티는 "뮬러 특검이 임명된 지 200일이 지났는데 대통령이 러시아와 공모했다는 증거는 단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다. 뮬러는 러시아 선거 개입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섹스 스캔들을 뒤지면서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고 했다. 뮬러가 수사가 아니라 '트럼프 파괴 공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폭스뉴스의 이런 설정은 여론에 반영되고 있다. 로이터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 공화당 지지자 네 명 중 세 명은 트럼프 대통령을 대상으로 악의적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특검 수사를 받는 트럼프 대통령의 처지는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난 닉슨 전 대통령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닉슨과 달리 트럼프에게는 폭스뉴스가 있다"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닉슨 전 대통령의 법률 고문이었던 존 딘도 "우리에게 폭스뉴스가 없었던 것이 아쉽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쉴 새 없이 언론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신문, 지상파 방송, 케이블 뉴스 채널 보도를 싸잡아 가짜 뉴스(fake news)라고 비난한다. CNN에 대해서는 FNN(Fake News Network·가짜 뉴스 통신)이라고 이름까지 바꿔 부른다. 언론들의 보도 태도 역시 호의적일 수 없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주류 언론을 통해 미국 정국 흐름을 좇다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를 제대로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다르다. 4월 16일 발표한 워싱턴포스트·ABC 공동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40%로 임기 초 100일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라스무센 여론조사에선 지지율이 50%로 오바마 대통령의 같은 시점 지지율보다 1%포인트 높았다. 주류 언론들은 라스무센 여론조사가 신뢰성이 부족하다고 깎아내리지만 2016년 11월 8일 대선 직전 트럼프의 우위를 점친 거의 유일한 여론조사 기관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공화당 지지층 지지율이 90%로 출발해서 50%까지 떨어진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88%로 출발해서 여전히 85% 선을 지키고 있다. 자기 표밭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 지지층 대부분이 폭스뉴스를 통해 정가 소식을 접하는 것이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폭스뉴스는 2002년 1월 이후 17년째 가장 많이 시청하는 케이블 채널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4월 9~15일 일주일간 황금 시간 시청자 수가 265만명이다.

폭스뉴스 혼자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반인 눈에 잘 띄지 않는 든든한 원군이 뒤를 받치고 있다. 전국적으로 지역 방송국 193곳을 소유하고 있는 언론 재벌 싱클레어 방송 그룹(Sinclair Broadcasting Group)이다. 지역 방송국 중 시청권 가구 점유율이 39%에 이른다. 2016년 퓨 리서치 조사에서 '어떤 언론 매체가 공정하다고 믿느냐'는 질문에 지역 방송을 꼽은 응답이 41%, 지상파는 27%였다. 지역 방송의 실력을 더 신뢰한다기보다는 지역 방송은 정치색이 없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통념과 달리 SBG는 강한 우파 성향이고 이런 정치색을 방송에 주입하고 있다.

SBG의 데이비드 스미스 회장은 2016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확정된 트럼프를 만나 취재 우선권을 받는 대신 트럼프 인터뷰 기사엔 논평을 달지 않는다는 밀약을 맺었다. 지난 대선 기간 SBG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보다 트럼프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우호적인 기사를 많이 취급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트럼프와 SBG의 밀월 관계는 취임 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SBG는 트리뷴 미디어와 39억달러 합병을 성사시켜 42방송사를 더 사들이려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235방송국에 시청 가구 점유율은 72%에 접근하게 된다. 지금도 세 가구 중 한 가구가 SBG 소속 지역 방송을 보고 있는데, 합병이 이뤄지면 네 가구 중 세 가구가 보게 된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시청 가구 점유율을 39%로 제한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SBG의 합병을 돕기 위해 심복을 FCC 의장에 앉혔다. SBG는 트럼프 선거본부의 대변인이었던 보리스 엡슈타인을 정치 해설가로 영입했다. '보리스와 함께 핵심을(Bottomline with Boris)'이라는 1분 30초짜리 논평 방송을 녹음해 자회사들이 의무적으로 방영하도록 하고 있다. 엡슈타인은 지난 20일 방송된 논평에서 코미 전 국장 회고록에 대해 "자신을 해임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복하려고 면담 기록을 폭로한 것"이라며 폭스뉴스를 지원 사격했다.

SBG는 엡슈타인 논평 같은 친(親)트럼프 성향 프로그램의 의무 방영 건수를 주 3회에서 점차적으로 9회까지 늘려갈 계획이다.

SBG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 터졌을 때는 본부에서 트럼프 코드에 맞는 앵커 코멘트를 작성해서 모든 지역 자회사가 그대로 읽도록 하기도 한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전국 평균 득표율은 힐러리 후보가 2.1%포인트 앞섰지만, 선거인단 수는 트럼프가 306대232로 힐러리보다 크게 앞섰다. 주 단위로 1%포인트 차로 이기나 90%포인트 차로 이기나 선거인단 수는 마찬가지인 미국 대선 제도 때문이다. 뉴욕·시카고·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에서 힐러리 후보가 큰 표차로 이긴 반면, 트럼프 후보는 중·남부 농촌 지역에서 골고루 이겼다. 민주당 초강세 지역에는 SBG 소속 방송사가 없다. 반면 SBG 방송사 시청권 지역에선 트럼프가 힐러리를 10%포인트 이상 앞섰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달 초 몬머스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CNN 중 누구를 더 믿느냐는 질문에 전국적으로 CNN 48%, 트럼프 35%였지만, 대선에서 트럼프가 10%포인트 이상 힐러리 후보를 앞섰던 지역에서는 트럼프 47%, CNN 37%였다. 트럼프 강세 지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보다 폭스뉴스의 신뢰도가 더 높았다. 한마디로 트럼프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서는 폭스뉴스가 신뢰받고 있고, SBG가 지역 방송을 장악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국 국정 지지율이 50%를 밑도는 상황에서도 재선 가능성은 높게 점쳐지는 이유다.

폭스뉴스가 시작되면 트럼프 트윗이 뜬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속사포처럼 트위터 글을 쏟아낸다. 몇 분 단위로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옮겨다닌다. 사람들은 "왜 이 시간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일까" 어리둥절해한다. 정치 미디어 분석가인 매슈 거츠는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대부분이 폭스뉴스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올린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폭스뉴스가 나가고 나면 몇 분 후 메아리처럼 트럼프 트위터가 따라온다는 것이다. 미국 동부 시각으로 지난 1월 2일 7시 37분 폭스뉴스가 "김정은이 자기 책상 앞에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핵 단추가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하자 트럼프는 12분 만인 7시 49분 트위터에 "내 핵 단추는 더 크고 파괴력이 크다"는 글을 썼다. 같은 날 밤 9시 5분 폭스뉴스가 "김정은이 남북 대화를 제안했다"고 보도하자 트럼프는 3분 후인 9시 8분 "북한에 대한 제재가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남북 대화는 좋은 뉴 스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트윗을 올렸다. 가끔은 폭스뉴스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타이밍이 따로 놀 때가 있다. 트럼프가 마러라고 별장에서 머리를 식히고 오면 그동안 못 봤던 폭스뉴스를 녹화로 보면서 트위터를 올리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광고나 관심 없는 뉴스를 건너뛰면서 시청하기 때문에 프로그램과 트위터의 시간 간격이 엇박자를 낸다고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25/20180425034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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