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수 여론독자부 차장
이한수 여론독자부 차장

한국 현대사 연구자인 어느 대학교수가 휴대폰 메신저로 우리 사회를 염려하는 메시지를 종종 보내온다. 그는 "대한민국 건국이 언제인지 문제가 아니라 망국이 언제일지 문제인 상황"이라고 탄식했다.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우리 사회의 안이한 대응에 대한 우려였다.

최근 새 메시지를 보내왔다. 초등학생 대상 한국사 만화책 내용이 '상상 이상'이라고 했다. 바른교육학부모연합 블로그에 실린 글을 덧붙였다. 한 학부모는 "초등 3학년 아이가 책을 한 권 읽고 '우리나라는 나쁜 나라'라고 해 충격을 받았다"고 적었다. 한국 현대사 폄훼는 이제 놀랄 일도 아니지만 북한 역사를 그린 일부 내용은 그야말로 '상상 이상'이었다. 김일성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북한 농민들이 토지 분배에 감격해 춤을 추며 "김일성 장군 만세"를 외친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은 1960년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썼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중략) //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시인은 이 시를 생전에 발표하지 못했다. 2008년 육필 원고가 발견돼 잡지에 실렸다. 시는 김일성을 찬양하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금기(禁忌)'를 말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아야 언론 자유라 할 수 있다는 주장을 '위악(僞惡)의 제스처'로 나타낸 것이다. 시인이 살아있다면 이제 한국의 언론 자유는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할 것이다.

음악가 윤이상(1917~1995)도 김수영이 말한 언론 자유를 한껏 누렸다. 그는 여러 차례 방북해 김일성을 "우리 역사상 최대의 영도자"라고 칭송·찬양했다. 그런데 사후에는 남쪽 고향 마을에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서고 탄생 100주년 기념 콘서트가 열리는 영광을 누린다.

윤이상·이수자 부부가 북한에서 김일성과 함께 찍은 사진. 평양에 있는 '윤이상 음악연구소'에서 이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DB
정작 '김일성 체제'의 언론 자유는 세계 최악이다. 최근 동료 기자는 북한 관련 신간 서평을 썼다가 "공화국 형법에 따라 극형에 처한다"는 협박을 받았다. '조선중앙재판소'라는 기관은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에서 추가적인 절차 없이 집행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식 재판은 언론 자유는커녕 반론 기회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김일성은 6·25전쟁을 일으켜 민간인 포함 300만명을 죽게 한 전범(戰犯)이다. 권력을 3대 세습한 그의 손자는 현 정부 출범 이후 넉 달 동안 핵·미사일 도발을 열한 번이나 벌였다. 전쟁 훈련을 하면서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하라"고 열을 올린다.

우리 사회 일부는 이런 체제를 만든 자에게 만세 부르는 '자유'를 맘껏 누리고 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진보'라고 한다.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야 만세 부르는 자유를 누리는 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21/20170921035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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