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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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를 가르치는 대학교수와 최근 '사드' 문제로 토론했다. 사드의 성능, 미·중의 입장 등 다양한 쟁점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사드 반대론자인 그에게 물었다. "사드 문제는 한국의 미래 진로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이 다시 '중국적 질서'로 들어가도 좋다고 생각하나?" 그의 대답이 놀라웠다. "중국적 질서로 복귀하는 것이 뭐가 문젠가? 과거 우리 민족이 1000년 이상 그렇게 살지 않았나?" 우리 사회의 사드 갈등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것은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관점 차이였다.

한국에서 사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중국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한·미가 "사드는 북한 견제용"이라 아무리 설명해도, 이들은 "중국 견제용"이란 중국 말만 듣는다. 자국 레이더로 한반도를 샅샅이 보는 중국이 사드를 트집 잡는 데는 한·미 동맹을 금 가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지적에 이들은 귀를 막는다. 반미(反美) 의식과 박근혜 정부 혐오감이 뒤섞인 '사드 반대론'은 미래 한국이 손잡아야 할 나라로 '미국보다 중국'을 꼽는다. 한국이 중국적 질서로 복귀하는 것이 국익에도 이롭다고 본다. 통일을 위해 협력해야 할 중국을 사드로 화나게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이들은 한·미 동맹이 깨지기 전까지 중국이 한반도 통일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중국적 질서'를 수용하려는 사드 반대파들이 자신에게 던져야 할 근본적 질문이 있다. '그 길이 자녀의 삶에도 최선인가' 하는 물음이다. 중국은 민주주의를 해본 적 없는 사회주의 대국이다. 그런 나라가 지배하는 질서 속에서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인권, 사상과 언론의 자유, 직접선거 같은 가치가 계속 보장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한국은 엄연한 독립국가인데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 중국이 추구하는 아시아 국제 질서는 주변국과의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중국 전문가 마틴 자크가 저서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에서 지적했듯, 중국은 21세기에도 '조공 책봉 관계' 같은 상하(上下) 관계를 추구한다.

한국이 중국 질서 속으로 들어갔을 때 중국이 한국을 어떻게 다룰지는 홍콩·대만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1997년 중국 복귀 이후 홍콩인들은 심각한 인권 후퇴를 경험하고 있다. 공산당 파워게임에 관한 책을 판 홍콩 서점 주인들이 가족도 모르게 중국 기관에 납치돼 반년 이상 구금당하는 일이 최근 벌어졌다. 중국은 올 초 반중파인 차이잉원의 총통 당선을 막으려고 대만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 한국의 위상은 '하나의 중국'인 대만·홍콩과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중국이 그렇게 대우해주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한국은 중국과 우호협력 관계를 원한다. 문제는 사드처럼 중국이 한국에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고 , 힘과 돈으로 무릎 꿇리려 할 때이다. 이럴 때 우리는 단호히 국가주권과 민주주의,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장차 강대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자주자강(自主自强)의 길을 가야 하지만, 스스로 그 길을 감당할 때까지 당분간 한·미 동맹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사드 반대론자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중국적 질서로 복귀하길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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