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친박·비박 싸움질… 野에 국회 권력 바치고도 계속
親盧·非盧는 나름 명분이라도 본인들도 "별 명분 없다"면서
굳이 더 싸워 망해가겠다면 집권당 格이라도 좀 지켜주길

 

권대열 정치부장[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권대열 정치부장[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대한민국은 집권당 지도부가 40일 넘게 비어 있다. 친박(親朴)·비박(非朴) 싸움 때문이다. 그렇게 싸우다 의회 권력을 야당에 거저 바쳤다. 그러고도 계속 또 싸운다. 보기 싫어도 봐야만 하는 입장에선 지겹다 못해 신물 난다. 더 한심한 건 도대체 이 사람들이 왜 싸우는지 알 수가 없다는 거다.

야당에도 비슷한 친노(親盧)·비노(非盧) 갈등이 있다. 그래도 여기는 나름 명분이 있었다. 친노는 상대적으로 진보, 좌우(左右)로 치면 왼쪽 성향이 강했다. 그래서 노무현 정권 부동산 정책의 경우 친노는 대체로 "가진 자들에게 중과세를 해야 한다"는 시각에서 종합부동산세 같은 걸 추진했다. 반면 비노는 "'가진 자'라는 특정 계급을 겨누는 식의 집중 과세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또 외교에서도 친노는 "미국과 중국을 다르게 취급해야 하느냐"는 입장, 비노는 대체로 "한·미 동맹이 그래도 우선"이라는 시각이었다. 북한 문제에서도 친노 측은 "화해 협력을 위해선 파격적인 지원도 괜찮다", 비노는 "북한을 엄하게 다룰 때는 다뤄야 한다"는 말을 했다.

친박과 비박은 이런 차이도 없다. 경제문제만 해도 김무성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보다 훨씬 더 친(親)기업적이고 우파적이다. '사회적 경제' 등을 주장하는 유승민 그룹과의 거리는 박 대통령보다 더 멀다. 그런데 같은 비박이다. 안보 문제의 경우 유 의원은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도입에서 정부보다 더 우파 쪽 주장이었다.

친박에서는 총선 공천 때 이런 유승민 그룹에 대해 '정체성' 문제를 제기했다. 그래서 문제가 됐던 작년 4월 8일 유 의원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다시 읽어봤다. 주요 내용은 ▲가진 자가 아닌 서민 중산층 편에 서겠다 ▲야당은 공무원연금 개혁에 반대하면 안 된다 ▲'증세 없는 복지' 대선 공약은 잘못이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관광진흥법 등은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 ▲사회적 경제를 건강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북한과는 대화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북핵 앞에서 안보에 더 신경 쓸 때다 등이다. 굳이 정체성을 문제 삼겠다고 한다면 '사회적 경제' 정도다. 그러나 그것도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지난 2009년 미 스탠퍼드대학에서 "경제 발전의 최종 목표는 공동체의 행복 공유에 맞춰져야 하며 정부는 소외된 경제적 약자를 확실히 보듬어야 한다"고 밝혔던 철학·비전과 다르지 않다. 목숨 걸린 듯 싸울 '거리'가 없다.

그래도 총선 전에는 '공천'이 이유일 수 있다고 이해해 보려 했다. 왜 편이 갈라졌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편은 갈렸고, 상대에게만 공천권을 주면 정치 생명이 위험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젠 총선도 다 끝나고 4년 임기도 확보했다. 싸울 이유가 사라졌다. 친박·비박 싸움은 2004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체제가 시작되면서 당권 그룹과 비주류가 갈리고, 비주류를 중심으로 2006년 친(親)이명박계가 생기면서 시작됐다. 그 뒤 서로가 공천에서 한 번씩 '학살'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앙금 때문에 싸운다? 그도 아니다. 지금 친박과 비박은 그때 구성과도 다르다. 비박의 핵심인 김무성·유승민은 그때 다 친박이었다. 친박 핵심처럼 된 원유철 의원은 친이계였다. 지금 싸움은 '역사성'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차기 주자가 친박과 비박에 각각 있는 것도 아니다. 새누리당엔 두 자릿수 지지율을 가진 후보 자체가 없다. '미래 권력'과도 무관한 싸움인 셈이다.

양측에서 그래도 생각이 좀 깊다는 사람들 몇명에게 "왜 싸우는 것 같으냐"고 물어봤다. "별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유도 없는데 저쪽에서 자꾸 계파를 갈라서 시비를 거니까 싸우는 것 같다"고 했다. 명분이나 철학, 정책 방향 등엔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 새 당권(黨權) 잡으려고 싸우는 것 아닌가? "공천권도 없고, 여소야대에 시달려야 하고, 차기 정권 창출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은 당권 잡아서 뭐하느냐. 그것도 이유가 아니다"고 한다.

결국 이유는 한 가지뿐인 듯하다. 그냥 "쟤들이 싫다"는 거다. 친박은 "대통령과 우리 말 안 들은 너희들 기분 나쁘다"는 것이고, 비박은 "너희가 권력 휘두르는 꼴 더는 보기 싫다"는 것이다. 한참 싸우다가 본질은 '화성'으로 가 버리고 "너 왜 욕해" "너 몇 살이야"라고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도 그런 싸움 굳이 계속하다 망해 가겠다면 뭐 어쩌겠나. 다만 대한민국을 책임졌던 정당, 보수 진영을 대표했던 정당으로서 최소한의 격(格)만이라도 지켜주길 부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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