核·미사일·생화학·사이버… 압도적인 북한 戰力에 맞서
低평가하고 고립시켜온 우리의 치명적 '眞實의 무기'
對北 삐라와 라디오 방송을 억지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박정훈 디지털뉴스본부장
박정훈 디지털뉴스본부장
북한이 낡은 무기와 형편없는 경제력을 갖고도 큰소리치는 것은 확실하게 믿는 게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비대칭 전력'이다. 핵·미사일에서 생화학·사이버 부대까지 북한은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취약 분야만 파고들어 우리의 목줄을 겨누고 있다. 그들의 비대칭 군사 협박은 얼마 전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 때 절정을 이루었다. 겨우 1단계에 불과한 SLBM 시험 성공에 얼마나 고무됐던지 북한은 한·미 연합 방위 체계가 '완전한 무용지물의 골동품이 됐다'(노동신문)며 기고만장했다.

북한의 협박엔 속임수와 과장이 많지만 우리가 속수무책인 것도 사실이다. 북한이 SLBM 시험에 나서자 한·미는 '수중(水中) 킬 체인(선제공격)'으로 막겠다고 발표했다. 북 잠수함이 우리 해안가에 근접해 미사일을 쏘기 전에 탐지, 선제 타격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구상이 군사적 수사(修辭)에 가깝다는 데 이견을 다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천문학적 비용도 비용이지만 깊은 수심의 동해를 파고드는 북한 잠수함을 찾아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속수무책 상황은 다른 비대칭 전력 분야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이미 6~8기의 핵무기와 고도의 생화학전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2009년 디도스 테러 등에서 입증됐듯 사이버 공격력도 상당하다. 그러나 우리는 똑같은 방식으로 대항할 수 없다. 북한이 핵을 가졌다 해서 우리가 핵 개발에 나설 수 없으며, 생화학 무기에 손댈 수도 없다. 우리가 사이버 보복에 나선다 해서 정보 후진국인 북한이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 열세고, 그래서 '비대칭'이다.

그런데 딱 하나 우리가 완벽하게 우세한 비대칭 전력이 있다. 북한 주민에게 김정은 정권의 실상을 알리는 '진실'이라는 이름의 무기다. 북한에 쏘아 보내는 전단(傳單·삐라)과 라디오 방송은 김정은의 아킬레스건(腱)을 핀셋처럼 공격하는 정밀 유도탄이다. 대북 전단용 풍선은 진화를 거듭해 이제 디지털로 무장한 스마트 미사일과도 같아졌다. GPS(위성항법장치)를 부착해 낙하 지점을 추적하고 타이머를 달아 목표 지점 상공에서 정확히 투하되도록 한다.

이들 '진실 무기'가 얼마나 위력적인지는 북한의 신경질적 반응이 말해준다. 민간 단체가 전단을 보낼 때마다 북한은 맹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풍선을 띄우는 남한 내 발원지(發源地)에 "조준 사격을 하겠다"는 군사적 공갈까지 한다. 물론 북한의 '발원지 보복' 협박은 엄포에 불과하다. 장소를 공개하고 띄우지만 않는다면 북한이 풍선의 원점(原點)을 찾아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국방부 관계자).

대북 라디오 방송도 마찬가지다. 현재 탈북자들을 주축으로 운영되는 3개 민간 방송국이 북한 땅에 진실의 전파(電波)를 쏘아 보내고 있다. 3년 전 이 방송국들이 대북방송협회를 결성하자 북한은 "황천길로 보내겠다"며 막말을 퍼부었다. 그만큼 아프다는 뜻일 것이다.

이 진실의 무기들을 '비대칭 전력'이라고 하는 것은 북한이 절대 대항하지 못하는 우리의 독무대이기 때문이다. 과거엔 북한도 삐라·라디오 등을 통한 대남(對南) 심리전을 적극 구사했다. 그러나 이제 북은 더 이상 삐라를 뿌리지 않고, 악명 높던 '구국의 소리' 방송도 중단한 지 오래다. 해봤자 먹히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이 인터넷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 하는 대남 비방은 일부 종북 세력 외엔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반면 우리가 보유한 진실의 비대칭 무기는 북한에 치명적 위협이다. 김정은 정권은 북한 주민이 진실을 알게 되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한다. 우리가 전략적으로 활용하기에 따라 고도의 대북 억지력(抑止力)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진실 무기의 전략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평가는커녕 남북 관계를 방해하는 냉전(冷戰)의 산물이라고 비난하는 세력까지 있다. 북한에 민주화 복음(福音)을 전하는 대북 방송들은 정부의 푸대접과 재정난에 시달리며 악전고투 중이다. 대북 전단은 좌파 단체들의 조직적 방해에 시달리고 있다. 야당은 정부가 대북 전단을 금지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미리 날짜와 장소를 예고하는 일부 단체의 이벤트성 풍선 띄우기가 옳은지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소리 소문내지 않고 조용히 전단을 보내는 북한 민주화 운동가들도 있다. 북한의 말 협박에 굴복해 유일한 비대칭 전력을 스스로 포기하라니 이런 바보 같은 말이 없다.

우리가 무장해제한다고 따라서 호응할 만큼 북한은 착하지 않다. '햇볕정책 10년' 경험에 따르면 우리가 유화적일 때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더 열을 올렸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연계해 진실 무기의 강도를 조절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효과적인 대북 억지 수단이 될 수 있다. 북한이 잠수함 미사일까지 개발하며 도발 수위를 높이는 지금은 더욱 강력하게 진실의 비대칭 전력을 키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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