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애기봉 등탑, 43년만에 철거

-'對北 심리전 상징' 왜 없앴나
고위급 접촉 앞두고 대화 무드
전문가 "회담서도 低자세 땐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것"

22일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해발 165m) 전망대. 대북 심리전의 대표적 상징물로 통했던 애기봉(愛妓峰) 등탑(燈塔)은 사라지고 없었다. 가로 2m70㎝, 세로 2m60㎝의 4각형 바닥에 남은 철골 자국이 등탑이 있던 자리를 말해주고 있었다. 대신 전망대 정문 앞에는 사업비 296억원의 '애기봉 평화공원 조성 계획도'가 걸려 있었다. 전망대를 관할하는 해병 2사단 공보 장교 황지우 중위는 "철거한 등탑은 고철로 고물상에 넘겼다"고 했다.

전망대를 찾은 일부 관람객은 등탑 철거를 아쉬워했다. 홍승진(82·서울 서대문구)씨는 "크리스마스 때 등탑에 불을 밝히면 참 좋았다. 북한 사람들도 좀 보게 놔두지 왜 없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진근(64·경기 김포)씨도 "통일이 되려면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을 많이 해야 하는데 트리를 없애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군(軍)이 지난 15~16일 경기도 김포시의 해병 2사단에 있던 애기봉(愛妓峰) 등탑(燈塔)을 철거했다. 1971년 세워진 애기봉 등탑은 18m 높이로, 43년 만에 철거됐다. 등탑이 철거된 자리에서 초등학생들이 22일 선생님으로부터 애기봉 등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지난 2012년 12월 애기봉 등탑 점등 때 모습. /오종찬 기자
군(軍)이 지난 15~16일 경기도 김포시의 해병 2사단에 있던 애기봉(愛妓峰) 등탑(燈塔)을 철거했다. 1971년 세워진 애기봉 등탑은 18m 높이로, 43년 만에 철거됐다. 등탑이 철거된 자리에서 초등학생들이 22일 선생님으로부터 애기봉 등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지난 2012년 12월 애기봉 등탑 점등 때 모습. /오종찬 기자
당국은 지난 15~16일 안전을 이유로 등탑을 철거했다. 국방부는 "국방부 시설단이 작년 11월 각급 부대의 대형 시설물 안전 진단을 한 결과 애기봉 등탑이 D급 판정을 받았다"며 "철골 구조물 무게 때문에 지반이 약해져 강풍 등 외력을 받으면 무너질 위험이 있어 철거했다"고 했다.

애기봉 등탑은 지난 1971년 애기봉 전망대에 18m 높이로 세워졌다. 맞은편 북한 개성과 불과 3㎞ 떨어져 있어, 점등 시 개성 주민들도 불빛을 볼 수 있다. 우리 군은 2004년까지 애기봉 등탑 바로 아래에서 대북 심리전 방송을 해오다가 남북 합의에 따라 중단했다. 북한이 애기봉 등탑의 불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전력 사정으로 어둠 속에 잠겨 있는 개성 주민들이 등탑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남한을 동경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북한은 애기봉 등탑을 대북 선전 시설로 규정하고 철거를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우리 군은 지난 2004년 6월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 회담에서 군사분계선(MDL) 인근 선전 활동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후 애기봉 등탑을 점등하지 않다가 2010년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그해 12월 점등 행사를 허용했다. 당시 북한은 포격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후 2011년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이유로 불을 켜지 않았고 2012년 다시 점등했다가 지난해 남북 관계 악화 등을 이유로 또다시 불을 껐다.

정부는 등탑 철거 이유로 '안전' 문제를 들고 있지만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 등을 앞두고 북한을 의식한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등탑 자리에 평화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한 김포시도 철거 사실을 사전에 몰랐다.

 
 
김포시 관계자는 이날 "언론 보도를 통해 철거 소식을 알았다"며 "김포시가 지난해부터 철거하려고 했지만 예산이 없어서 못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군에서 해버렸다"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남북 대화는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북 전단을 막고 등탑을 철거해서 대화 분위기를 만드는 것까지는 좋지만 실제 남북 회담에서까지 북한에 저자세로 나가게 되면 대화를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15일 남북 군사 당국자 접촉에서 북측이 애기봉 등탑 철거를 강하게 요구해 우리 측이 이를 받아들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당시 접촉에서 포괄적으로 서로 비방 중상을 중단하자는 얘기는 있었지만 애기봉을 특정해서 거론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도 "우리가 북한 눈치를 보지는 않는다"며 "등탑은 낡아서 철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포 애기봉 통일전망대에 세워진 애기봉 기념비. 1966년 이곳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다.
김포 애기봉 통일전망대에 세워진 애기봉 기념비. 1966년 이곳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다.
☞애기봉(愛妓峰)
경기 김포시 최북단에 위치한 봉우리.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154고지가 바로 이곳이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병자호란때 평양감사와 애첩 ‘애기’의 슬픈 사랑 일화를 듣고 ‘愛妓峰’이라는 친필 휘호를 내렸다. 휴전 이듬해인 1954년부터 정상에 트리를 설치해 성탄절과 석탄일마다 불을 켰고, 1971년에는 현재 높이 30m의 철골구조 등탑을 설치했다. 이 등탑의 불빛은 개성 시내에서도 육안으로 보인다. 2004년에 열린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에서 북측이 항의함에 따라 등을 켜지 않기로 했다가, 2010년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점등을 재개했다. 북녘땅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명절이면 이곳 망배단에서 제를 올리는 실향민들의 행렬도 끊이지 않는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