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 위해선 우리가 제기했던 문제도 같이 논의" 주장
어수선한 北 정국도 영향… 회담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뜻

북한은 9일 설맞이 이산가족 상봉 제안을 거부하면서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남측의 '무엄한 언동'을 직접적인 이유로 언급했다. 그러나 "표면적인 이유와는 달리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연계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 같다"는 게 우리 정부 분석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내부 분위기가 아직 남북 대화 테이블에 나올 만큼 안정적이지 못한 것 같다는 관측도 있다.

◇북, 연례 군사훈련 또 문제 삼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이날 통지문에서 "남측이 종래의 대결적 자세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다. 자신들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 마련을 언급했는데, "남측이 새해 벽두부터 총포탄을 쏘아대며 전쟁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북한 매체들은 지난 5일 우리 3군 사령부 예하 부대가 경기도 연천 일대에서 실시한 '신년 적(敵) 전면격멸훈련'을 두고 "북침 전쟁연습을 강행했다"고 비난한 바 있다. 북한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키 리졸브 연습을 겨냥해 "곧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이 벌어지는데 총포탄이 오가는 속에서 이산 상봉을 맘 편히 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9일 서울 대한적십자사 별관에 마련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 접수 사무실을 한 직원이 정리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9일 서울 대한적십자사 별관에 마련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 접수 사무실을 한 직원이 정리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북한은 또 남측의 '무엄한 언동'도 이산가족 상봉을 거부한 이유로 꼽았다. 지난 1일 "적이 우리를 시험하고자 한다면 멸망을 자초할 것"이라고 한 김관진 국방장관의 발언 등을 문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대해서도, 북한 핵을 방치할 수 없다고 한 부분,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의 불안정성과 급변사태를 언급한 부분 등을 문제 삼았다.

북한은 "좋은 계절에 만나자"며 날씨 탓도 했다. 금강산 지역이 추워서 고령의 이산가족이 만나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과거에도 2월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한 적이 있다"며 "북한이 말한 '좋은 계절'은 날씨뿐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회담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과 연계 전략

우리 정부는 이날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거부한 것은 금강산 관광을 대가로 받아내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이날 통지문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서는 북측이 제기했던 문제들도 같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이 지난 추석 이산가족 상봉 회담 때부터 제기했던 문제는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이라고 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이번 설맞이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북한이 얻을 이득이 별로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서는 북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신변안전 보장 등의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는 상태다.

남북관계 주도권 다툼이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먼저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하며 적극적으로 나왔는데 남측의 이산가족 상봉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수동적으로 끌려간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장성택 숙청의 후속조치로 북한 내부가 아직 어수선하기 때문에 이런 행사를 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부담될 것"이라고 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